'침의' 허임 선생은 어떤 인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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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의' 허임 선생은 어떤 인물이었나
  • 승인 2014.07.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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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기자

신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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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간행 370주년 계기로 재조명 움직임

‘허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임진왜란 전후 침과 뜸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 침의(鍼醫) 허임 선생의 삶과 의술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박수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실 주최로 「침구경험방」 간행 370주년 기념 세미나가 ‘조선 제일의 침의 허임 침구학 조명’이라는 주제로 1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진>

박수현 의원은 “허임 선생은 침과 뜸에 뛰어나 선조 때 왕을 치료하기도 했고, 광해군 때는 허준과 함께 의사로서 뛰어난 이들을 기록한 ‘의관록’에도 기록될 정도로 조선에서 침의로 명성이 높았다”며,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한의학을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서 전종욱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는 ‘허임 「침구경험방」의 한국의학사에서의 의의’에 대해 “「침구경험방」은 감히 옛사람의 저술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허임이 일생동안 고심해 얻은 것을 차마 그냥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곡진한 언어로 표현해 물려준 고귀한 유산”이라며, “우리 전통에서 의술의 경지는 예술과 같아서 한 번 정점을 찍은 작품은 역사에 그 빛을 끊임없이 발하며, 왕희지체, 추사체, 안평대군의 글씨가 그렇듯 허임의 침술과 「침구경험방」은 그 자체로 불멸”이라고 말했다.

임선빈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실 박사는 허임의 생애와 그 유산에 대해 설명하며, “허임은 임진왜란의 전란 속에서 공주와 깊은 연고를 지니게 됐으며,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만년에 공주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침구서를 집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허임 관련 유산을 빼어난 자연경관과 수백년의 문화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공주와 연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서 박주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허임과 침구학의 문화관광자원화를 위해서는 허임의 스토리를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도록 관련 극본 공모전을 하고, 이를 활용해 드라마 제작을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학술 세미나와 문화축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소설 「조선 제일침 허임」의 저자 한의사 이상곤 원장(갑산한의원)은 “천민에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고 어의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었다”며, “당시 중국에서 전래된 다양한 침법이 있었지만 조선화를 통한 자주적인 침법은 허임을 조종으로 삼아 발달했다”고 침구계의 독보적인 인물로 허임을 평가했다. 이 원장은 “하지만 현재 이를 이어받아 침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IMS와 침구사의 존재 등 때문에 그 우수성이 제대로 조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침술은 단순히 기술적인 영역뿐 아니라 전체적인 한의학의 부분으로서 이론적 영역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고 한의계에 과제를 던지기도 했다.

다른 한의사도 “허임의 침 시술 능력은 허준도 인정할 정도였다”며, “현재 한의사 중에서도 침구시술에 특화된 4년의 병원수련 과정을 수료한 경우, 자격시험을 통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침구과 전문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인 이 침구학의 한 부분을 수백년 전에 다진 분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신은주 기자 44juliet@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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