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 하계 의료봉사에 대한 단상 - 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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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생 하계 의료봉사에 대한 단상 - 강용원
  • 승인 2003.08.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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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혜대상 선정은 의료봉사의 새로운 지평”


강용원 - 경원대 한의대 동아리 언재호야 회장(경원대 본2)


금년에도 여름방학을 맞아 전국의 한의대생들이 하계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경원대 한의대 동아리 언재호야팀은 기존의 의료봉사 관행과 달리 7~8월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서 지역주민 중 의료보호1·2종만을 선별해, ‘저소득층을 위한 한방의료봉사’을 벌였다. 다음은 강용원 언재호야회장이 의료봉사 추진과정과 심경을 적은 것이다. <편집자주>


1. 가치를 따진다

사실 대학인에게 봉사란 말처럼 익숙한 것도 없다. 더군다나 의료를 수단으로 삼는 우리 경우라면 쉽게 생각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대상이 그 누구든 확보될 수 있는 일련의 우월 의식과 맞물려 있다. 봉사가 한 순간에 시혜로 둔갑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봉사에서 누가, 뭘 가지고 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바로 대상이 누구냐 하는 문제다.

대상을 엄밀하게 인식하지 않고 얼버무리면 봉사의 본질은 여지없이 훼손된다. 봉사 대상을 엄밀하게 인식한다는 말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봉사 대상을 엄밀하게 ‘선정’ 해야 한다. ‘선정’한다고 하는 표현이 오히려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듯 하지만 선정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이미 사회가 해 놓았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를 엄밀하게 읽을 때 비로소 선정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2. 함께 한다

위와 같이 가치를 따지는 문제 의식은 실로 사소한 경험에서 나왔다. 지난 몇 년 동안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 있다고 판단한 특정 지역으로 들어가 서 두달씩 봉사 활동을 펼쳤다. 물론 지역 자체도 문제 삼을 만한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무료 봉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대거’ 스며드는 것이었다. 심지어 최고급 승용차를 끌고 오는가 하면, 현재 모 대학 한방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중인데 침 맞으러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정도가 지나친 시점에 이르렀을 때, 일부 봉사자들 사이에서 이런 봉사라면 인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행진은 이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인터넷도 뒤지고 신문사 사회부 기자와 접촉도 하고 사회복지회관을 이곳 저곳 가 보기도 하며 극복 방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떠올린 것이 진보적인 정치를 하는 후배였 다. 정보든, 동원이든, 조직이 든 우리보다는 훨씬 앞서 있으 니 어떤 형태로든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찾고 있었고, 우리로 인해 사업이 오히려 확장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가 공무원 노동 조합과 연대를 제의함으로써 나름대로 완벽한 대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 상황을 소상하게 아는 사회 복지사들이 우선 순위를 매겨가며 어려운 환자들을 확보하였다. 그렇게 선별된 환자 67명의 명단이 의료 보호 등급,현재 앓고 있는 질환, 연령, 성별 등의 정보와 함께 첫날 진료 대상자로 사전에 통보되었다. 공개적인 홍보를 일체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정치하는 그 친구는 자신의 단체를 활용해 거동이 불편하고, 거리가 먼 환자들을 택시나, 봉고로 실어 날랐다. 그 밖에도 봉사 허가, 장소(장소 문제는 공개하기 어려운 뒷 얘기가 많다. 재미있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서 씁쓸할 따름이다)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두 단체의 노력이 지대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 부문간 연대의 힘으로 별 무리없이 의료 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매주 조금씩 명단을 추가로 받아 6회차 봉사에서는 150명을 진료하였다. (이 150명 속에는 입소문 덕에 온 환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평가가 쉽지 않으나 일단 정직하게 밝혀둔다.) 만족할 만한 단계도, 수준도 아니지만 의료 봉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단서로서는 충분한 값어 치가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또는 이와 유사한 연대의 틀을 잘 활용한다면 의료 봉사는 물론 의료 전체의 사회적 가치가 새로이 자리 매겨질 것이다.

3. 어둠 속에서 빛을 본다

“네가 자격이 있느냐.” 학생으로서 의료 봉사에 임할 때마다 많이 듣는 질문이다. 대학생에게 어떤 수준과, 권한 안에서 합법적인 진료권을 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사회 체제와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편협하고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학생 봉사의 가치를 함께 볼 때 두가지 정도를 제안할 수 있다.

첫째, 학생회가 주관하든, 어떤 동아리가 독자적으로 행하든 모두 한의계 전체의 진료 체계 안에서 파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의대 연합 봉사 네트워크, 또는 한의사협회 산하 봉사 네트워크 건설이 시급하다. 그래야 현직 한의사를 상부 진료 단위로 하는 공신력 있는 봉사 체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매우 이상주의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한의학이 서 있는 자리를 본다면 더 이상 미루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 학생 봉사를 설령 실습이라고 규정하더라도 그 평가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좀더 철저하고, 체계적인 현장 중심 교육뿐이다.

다른 나라들의 의학 교육 실태를 들어 보면 우리 교육이 너무 환자에게서 격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논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심연을 6년 동안 너무 깊게 파고 있다는 얘기다.

4. 희망이 현실이다

보잘 것 없는 경험에 기대어 너무 크낙한 희망을 말했다.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이 땅에서 한의학도로 살면서 그런 희망 한번쯤 말해 보는 것도 행복하리라 믿어 만용을 부렸다. 부디 이 희망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수평선 같은 것이 아니라, 절망을 뚫고 뿌리 내리는 옹골찬 현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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