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디지털의학 사암침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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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디지털의학 사암침법 (1)
  • 승인 2013.01.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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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제준태

yueing@naver.com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제준태
한방내과 전문의
소현자의 한의학 날개달기
http://www.kmwiki.net/xe/38008
경락은 순환한다는 것이 고대 경락학설의 성립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학파의 주장이다. 그 이전의 경락은 구심성의 반응 노선으로 경맥 간의 교류나 연결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내경, 특히 영추 경맥에서는 이미 완전한 닫힌 순환 체계를 가진 경락이 완성되고 둥글게 이어져서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고대의 순환계로서의 경락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는 경락은 마치 끊임없이 흐르고 서로 이어진 체계로만 인식하고 있다.

 

최소한 경락학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경맥의 유주에서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오수혈이나 원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원혈은 손목과 발목 부위에서 고대의 경락이 시작되는 경맥의 기시점에 해당하는 혈위이다. 오수혈은 정형수경합의 5개 혈이 각각의 경맥의 말단에서부터 주슬관절까지 배치되어 있다. 경락이 순환계라면 원혈과 오수혈의 사용에 대해서는 오류가 분명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원혈과 오수혈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명확한 치료 효과를 가진 혈위들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오수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암침법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사암침법은 기존의 침법과 너무나도 다른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침술 체계는 혈위에 대한 자극과 반응의 대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사암침법의 체계는 오행을 통한 장부의 조절로 세트로 된 침 처방이 의미를 갖게 된다. 동시에 영수보사법으로 경락의 순행방향, 구육보사, 남녀, 좌우, 오전 오후의 변화에 따른 자극의 변형 등의 복잡한 이론을 포함하게 된다.

과연, 사암침법은 기존의 침법을 계승한 것일까? 필자는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사암침법은 디지털 침법이다.
디지털의 세계가 0과 1로 표현되듯, 사암침법 역시 0과 1로 표현된 침법이다. 물론 오행의 배속, 십이경의 장부 배속 등도 있지만 모든 것이 분절화되어 있다. ‘폐허’를 치료하는 처방은 ‘폐정격’으로 태백 보, 태연 보, 어제 사, 소부 사로 구성되고 각각의 오수혈의 오행 속성을 매칭시켜서 자경보사와 타경보사를 하나의 처방으로 묶어 낸다. 동시에 보사법으로서 남/녀, 좌/우, 오전/오후에 따라 전혀 반대의 염전 방향과 횟수를 제안하고 있다.

기존의 침법은 아날로그 침법이다
경락은 여환무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체계이다. 따라서 경락의 특정 부위에 자극을 하면 그 흐름을 조절하게 되고 그래서 장부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경락학설의 바탕이 되는 생각이다. 동시에 임상적 관찰을 통해 어떤 증상에 어떤 경혈, 혹은 어떤 경맥을 사용하면 효과적이라는 경험에 입각한 처방이 전수되었다. 황제내경 역시 어떤 증상은 어떤 경락의 문제다, 혹은 이런 증상에는 이 경락을 취하라는 형식으로 경락의 사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정경침법에서 경락이 서로 이어진 방식에 따라 순경, 상하상전, 장부상통 등의 원리로 서로 다른 경락을 찾아 치료하기도 한다. 침구처방 자체가 경험적인 부분도 있지만, 경락은 서로 다른 두 지점을 이어 준다 혹은 순환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사암침법은 경락의 순행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경락끼리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주슬관절 이하만 취급한다. 물론 경험에 입각한 임맥, 풍지, 풍부, 이추 오추, 요안 등의 혈을 사용하고 있지만 특수한 경우로 생각된다. 게다가 타경보사의 원리 경맥의 장부음양과 오행속성만을 가지고 와서 사용한다. 토의 속성을 가진 경락이 중요할 뿐 이 경락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다거나 하는 설명은 없다. 오히려 이 형태는 순환성 경락 체계 보다는 구심성의 경락 체계를 가지고 있던 영추 경맥 이전의 경락 체계로 더 쉽게 설명이 된다. <표 참조>

 

 

태백 / (보) / 족태음비경의 토혈(타경의 토경토혈)

태연 / (보) / 수태음폐경의 토혈(자경의 금경토혈)

어제 / (사) / 수태음폐경의 화혈(자경의 금경화혈)

소부 / (사) / 수소음심경의 화혈(타경의 화경화혈)
 

◇사암침법 폐정격의 구성 방법

*'폐허'를 치료하기 위해 토생금, 화극금의 원리를 바탕으로 토를 보하고 화를 사한다(補母子瀉)는 원리로 처방을 구성한다. 장부의 관계나 경락의 연결 방식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오직 음양 속성(장/부)과 오행 속성에 의거해서 처방을 구성한다.

 

사암침법의 보사법인 영수보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신뢰성이 있을까? 일단 개념적으로 접근하면 지구는 아날로그로 연속선상에 있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고, 경락의 순행 역시 마찬가지로 연속적이다. 하지만 영수보사는 그것을 분절화시켜서 오전과 오후를 정반대의 속성으로 규정한다. 경락의 순행 역시 연속되며 이어져 있지만 각각의 경락을 분절화시켜 순행방향을 결정한다. 남자 여자 역시 반대의 속성으로 규정하게 된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연속되는 시간이라는 속성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버리면서 ‘정오’가 문제 된다. 오전과 오후가 완전히 반대가 된다면 정오는 0값이 된다고 하고, 오전과 오후의 기 순환의 벡터값이 반대라고 한다 하더라도 가속도가 아닌 기의 흐름 속도에는 정오로부터 경과된 시간에 따라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즉, 오전과 오후는 서로 반대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오후 3시와 오후 6시에 기의 순행 속도가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정오와 가까운 시간일수록 경락의 순행 속도에 대한 추측은 너무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하늘의 한 해의 시작은 동지, 땅의 한 해의 시작은 대한, 사람의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낮의 길이 변화와 달리 실질적으로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는 시작점은 대한이다. 하루 중에서도 정오에 남중(한국 영토 내에 존재하지 않는 도쿄를 지나는 경도인 JST를 사용하므로 약 30분의 오차가 있다)하더라도 사람에게 반영되는 시간은 훨씬 더 늦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존의 경락 학설은 사람의 오전/오후 변화 기준을 申時(오후 3~5시)로 보고 있다. 현재의 영수보사는 이러한 오류를 갖고 있다. 절대적으로 이 방식의 보사법을 신뢰하시는 분들도 있고, 경험적으로 받아 들이시는 분도 있고, 극단적으로 그럴 필요 없다고 보시는 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수보사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자극량의 조절에 신중해야 한다는 개념만 받아 들이고 염전의 강도만 조절해서 사용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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