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의사와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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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의사와 의약품
  • 승인 2012.09.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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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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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한약의 현대화, 산업화란 무엇인가? 최근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제의 근본은 한의사들이 현대적인 의약품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고, 한약으로 만들어진 의약품에 관심이 없었던 것에서 초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의약품은 약사법 소관으로 약사법에서 다루는 ‘약사(藥事)’란 “의약품·의약외품의 제조·조제·감정(鑑定)·보관·수입·판매와 그 밖의 약학기술에 관련된 사항 <약사법 2조1항>”을 말한다.
그렇다면 약사법에서 말하는 의약품이란 어떤 것인가? ‘의약품’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물품을 말하는 것으로 포괄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가. 대한민국약전(大韓民國藥典)에 실린 물품 중 의약외품이 아닌 것
나. 사람이나 동물의 질병을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중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
다. 사람이나 동물의 구조와 기능에 약리학적(藥理學的) 영향을 줄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중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 <약사법 2조4항>

이 의약품과는 별도로 약사법에는 한약과 한약제제가 정의되어 있다.
‘한약’이란 동물·식물 또는 광물에서 채취된 것으로 주로 원형대로 건조·절단 또는 정제된 생약(生藥)을 말하며, ‘한약제제(韓藥製劑)’란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을 말한다. <약사법 2조 5,6항>

한의사와 제약회사의 바람직한 관계는

이 정의에는 한약제제는 의약품이란 것이 명시되어 있다. 과연 의약품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사법에서 추구하고 있는 의약품의 특징이나 조건을 살펴봐야 한다. 약사법 체계하의 의약품이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시하는 의약품의 품목허가 및 신고를 득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허가한 GMP시설에서 생산하여 의약품의 조건인 안전성 유효성 안정성 품질균일성을 확보한 제품이어야 한다. 그래서 의약품은 식약청 허가나 신고를 받아 제약회사에서 제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의사들은 의약품인 한약제제를 한의원에서 내가 끓여주던 탕약을 제약회사에서 대량으로 대형 탱크에서 끓여서 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본인이 탕약을 조제해서 환자에게 주던 한약 생산자로서의 입장에서 제제의 생산자인 제약회사를 보니 제약회사는 한의사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적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제약회사와 한의사는 상호경쟁관계인가? 제제가 많이 팔리면 탕약은 망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의사들은 제약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호 윈-윈의 협력관계여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전에는 「동의보감」 「방약합편」을 보고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으로 환자에게 약을 조제하여 달여 주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대사회가 산업화된 정보사회이고 국민들이 한약에서도 안전성 유효성 정보를 요구하면서 한의사들이 탕약을 쓰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

환자들은 이제 한약에 대해서 약재의 원산지를 묻고 농약이 오염되었느냐 중금속이 있느냐 유해물질을 신경 쓰고, 이 약을 먹으면 확실한 효과가 나는지 답변을 요구하고 얼마나 오래 먹어야 하는지, 하루에 2포만 먹으면 안 되는지, 먹고 간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등을 묻거나 궁금해 한다.

한약도 현대적인 의약품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한약재의 경우 이제는 규격품을 의무 사용해야 하므로 규격품 한약재의 유해물질 검사결과는 보여줄 수 있겠지만, 환자가 궁금해 하는 이런 정보들은 의약품정보(Drug information)로서 한의사 개개인이 자신이 쓰는 모든 탕약에 대해서 답변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동의보감」에 이런 경우에 쓰라고 적혀있다는 말로 납득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의약품개발이라는 것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의약품 정보를 만드는 과정이다. 양약의 경우는 이런 정보가 이미 의약품 개발단계에서 만들어진다. 의약품을 개발하는 제약회사가 연구개발비를 들여 약리, 독성정보 등의 비임상자료들과 임상시험을 통해 임상약리, 유효성, 안전성 등의 임상정보를 만들고 품질기준을 잡아서 자사제품이 유효성, 안전성, 안정성, 품질균일성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하고 식약청에서 허가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양약은 평균 10억 달러, 1조원의 연구비가 소요된다. 비아그라의 경우는 130건이 넘는 임상시험을 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임상시험을 했을까? 바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의약품 정보들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약도 이런 의약품 정보가 필요한 시기에 들어섰다. 한약은 전통의서에 적혀있는 내용 뿐 현대적인 의약품 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이 상황에서 개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내가 사용한 처방이 환자에게 좋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도 그건 그 한의사가 쓴 그 약이 환자에게서 보여준 효과일 뿐이다. 탕약은 편차가 크기 때문에 모든 한의사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이 한의학이라는 보편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천연물신약, 의약품 조건 갖춘 한약제제

이 의약품 정보, 곧 안전성 유효성 정보, 품질관리 정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제약회사이다. 한약도 의약품화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제약회사가 아니더라도 품질관리를 잘 해서 한약을 잘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원하는 의약품정보를 만드는 데는 자본이 필요하며, 이 자본은 제품의 판매 규모가 일정량을 넘어야 조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가 되면 제약회사가 되어 정식 의약품 허가를 받는 것이 낫다.

표준화된 처방으로 제약회사에서 임상연구의 결과로 논문으로 나와야 하며, 그 약이 제품이 되어 모든 한의사가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런 의약품 정보를 생산하여 제공해 주는 제약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여전히 한의사가 안전성 유효성 정보가 미비한 스스로 조제한 한약을 쓰겠다면 필요 없겠지만, 이제는 안전성 유효성 정보가 있는 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의사가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제약회사에 원하는 것은 안전성 유효성 정보면제로 한약을 쉽게 만들거나 건기식으로 만들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 정보를 제공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균일한 품질의 믿을 수 있는 한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다. 이러한 약을 만들어 제공한다면 한의사들이 사용할 용의가 있으며, 이익은 그 결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의약품의 조건을 갖춘 가장 바람직한 한약제제가 천연물신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약제제에 관한 잘못된 해석

현재의 한약제제의 제도는 안전성, 유효성 정보를 대부분 면제해 주고 있다. 약사법상 한약제제의 정의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이지만, 관행적으로 기존한약서에 수재되어 있는 경우만 한약제제로 보고 기존한약서에 수재되어 있으므로 장기간 사용되어 안전성 유효성이 입증된 것으로 보아 자료제출을 면제해 준다. 반면 기존한약서에 없거나 새롭게 개발된 처방의 경우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이라도 한약제제로 보지 않는 공무원들이 다수이다.

이러한 관행적인 해석은 매우 문제 있는 것으로, 10종 의서 중 가장 최근의 서적인 「동의수세보원」이 1901년 출판된 것으로 최소 100년 전의 서적에 적혀있어야만 한약제제가 되니 최근 이루어진 한약의 발전은 한약제제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생한방병원의 처방인 청파전이나 「한방임상보감」에 수재된 배원식 선생님의 활맥모과주와 같은 처방을 의약품으로 개발하고자 할 경우 천연물신약 트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원하는 안전성 유효성 정보를 갖춘 의약품으로 엄연히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약리학적 효능입증을 거쳐) 제조한 천연물신약 한약제제로 해석되어야 한다. 한약제제도 현대적 발전이 가능한 구조여야 전통학문인 한의약의 현대적발전이 있으며 미래가 있다.

제제가 발전하면 탕약도 같이 발전한다

예전에는 한약이 자료를 갖춰 의약품허가를 받아서 생산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안전성 유효성 자료제출면제가 아니면 제제 생산이 어려웠고, 한약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공무원들이 대다수라 행정업무를 처리하면서 한방원리를 한약서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해석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한약도 근거자료를 갖출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복지부나 식약청이 한약에 대한 경험도 많이 축적하였으며, 근무 한의사, 한약사의 수도 수십 명으로 충분히 한방원리를 한의약 학문에 근거하여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제제발전이 탕약에 영향을 줄까 우려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탕약은 제제의 시대에도 여전히 효능이 신속하고 가감이 가능하여 환자의 증상에 가장 잘 맞는 맞춤형 약품으로서 한의약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리는 제형이다.

제제에서 만들어진 안전성, 유효성 정보는 일본한방제제의 예에서 보듯이 전반적인 한약의 신뢰도를 제고시켜 한의약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탕약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제제가 발전하면 탕약도 같이 발전한다. 한약제약회사가 발전하면 한의사도 한의학도 같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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