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80)「丹溪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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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80)「丹溪心法」
  • 승인 2011.03.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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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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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심법
形色이 다르면 治法도 달라야

조선시대 우리 의학에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의학설로 朱震亨(1281∼1358)의 滋陰論을 비롯한 단계학파의 학설을 빠트릴 수 없다. 그는 「內經」의 여러 문구를 새롭게 해석하여 ‘陽常有餘, 陰常不足’이라는 말로 滋陰降火論의 입론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곧이어 景岳을 비롯한 여러 의가들로부터 집중 공세를 받았고,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石谷 李奎晙으로 하여금 扶陽論을 제창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주단계가 우리 의학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뚱뚱한 사람과 마른 체질의 사람(肥瘦人)이 서로 생리가 다르게 되어 살찐 사람(肥人)은 습이 많고 야윈 사람(瘦人)은 화가 많다고 한 점이다.

이 말은 「동의보감」 본문 첫머리에서 身形藏府圖와 함께 등장하여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졌는데, 허준이 드러낸 이 글귀로 인하여 결국 조선의학에서 전대미문의 체질의학이 배태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허준은 사람의 外形과 色澤이 서로 다르면 장부의 기가 서로 다름에 따라 병증이 비록 동일하다 하여도 서로 다른 치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形色旣殊, 臟腑亦異 外證雖同, 治法逈別)

특히 허준은 단계학파의 역사적 중요성을 아주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集例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허준이 東醫의 설정의 배경으로 삼은 南醫·北醫 가운데, 주단계는 바로 南醫의 宗匠으로 추앙받는다.

국내 단계 연구 전문가인 차웅석 교수는 주단계의 의학적 계보를 정리하다 보면 두 명의 대표적인 직계 제자를 만나게 된다고 하였다. 부자 2대에 걸쳐 단계를 스승으로 모신 劉純(14세기, 자는 宗厚)과 주단계의 심복이었던 戴思恭(1324년경∼1405)이다.

그들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스승의 어록을 받아 적었고 그것을 당대 지식인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정교한 언어로 바꾸었다. 다만 그들은 서로 성향이 달랐기 때문에 스승의 어록을 정리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은 종으로 스승의 생각을 심화시켰고 한 사람은 횡으로 스승의 견해를 엮어갔다고 평하였다.

실제 「의방유취」에는 ‘格致餘論’, ‘局方發揮’와 같은 단계의 저작이 입수되었고, 「동의보감」 역대의방에는 朱震亨著 ‘丹溪心法’과 方廣이 엮은 ‘丹溪心法附餘’, 王綸이 지은 ‘丹溪附餘’가 별개로 올라있다. 또한 「의방유취」에는 劉純의 ‘醫經小學’, ‘玉機微義’ 등이 입수되었고, 「동의보감」에도 ‘옥기미의’가 들어 있어 우리 의학에 얼마나 단계학설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는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또 명대를 거치면서 정리되고 검증된 단계의학은 더욱 더 보편성을 갖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은 虞摶의 「醫學正傳」(1515)이다. 뒤이어 方廣의 「丹溪心法附餘」(1536)와 李梴의 「의학입문」(1575)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모두 조선의학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졌으며, 특히 「의학정전」과 「의학입문」은 의과고시 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중시되었다.

고온건조한 중국의 남쪽, 절강성 구석진 곳에서 火熱을 잠재울 자음론을 설파한 주단계의 勞作, 이 책에 담겨진 많은 치법과 사상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의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생각은 북쪽을 거쳐 조선에 들어와 형색과 장부가 다르면 체질이 다르고 그들을 치료할 방법 또한 달라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의 빗장을 여는데 일조하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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