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77) - 「愚岑漫稿」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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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77) - 「愚岑漫稿」②
  • 승인 2011.02.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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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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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외로움 노래한 醫員의 詩歌集

책 안에는 記文 말고도 別宗人賢機, 有客酒, 家鴨, 題浩然齋, 別, 次黃禎, 偶吟, 病中有感, 贈黃禎, 詠雪 등 수 많은 시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몇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吃草有感은 담배를 피우며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지은 시로 “싸늘한 등불 마주하고 앉아 홀로 잠 못 이루니 / 江南에서 博山爐 옆에 두고 담배를 태우네 / 사방의 파도, 연이은 세 봉우리 두르고 / 두 줄기 연기 피어올라 하나로 합해지네.……”라고 노래하였다.

自題敬庵韻, 又題愚岑韻 두 편의 시에서는 자신의 처음 호였던 경암과 나중에 쓴 우잠이라는 호에 대해 그 의미를 부연하고 있다. 우잠에 대해서 시의 첫 귀에서 “아득한 세상만사에 무엇이나 바보처럼 처신하니 근심 있는 이에게 이 즐거움 말하지 말라”고 하여 스스로 은인자중하면서 어리석게 처신하는 현자의 도리를 내비치고 있다.

위의 시에 次韻한 進士 文敬憲은 “산은 본래 어질고 늙은이는 어리석지 않으니 / 어찌 스스로 어리석다 자처하며 느긋하게 즐김이 이토록 심한가”라고 읊어 우잠이 산중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함을 탄식하였다.

권말에는 또 機堂自序라는 한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것 역시 만사만물이 발동하는 이유가 된다는 의미에서 ‘기틀 機’자를 써서 지은 아호 機堂의 뜻을 밝힌 것이다. 다만 이것이 부록에 들어 있어 저자의 또 다른 호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寄家書에서는 “아득히 동서로 나뉘어 소식이 더디니 / 귀향의 꿈 속에서 부질없이 만난 것이 몇 밤이었던가”라고 노래하여 그가 긴 세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곳곳을 떠돌면서 지냈음을 짐작케 한다.

일평생 지은 시가 적지 않게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인임을 짐작할 수 있는 시귀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이 시기 여전히 士族이 의업을 행하는 일이 그다지 떳떳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정황은 다음의 시에서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이제까지 수장한 시가 몇 편이던가 / 자자하게 시 짓느라 날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지 / (중략) 재주 없는 나를 그 누가 알아볼까 / 곤궁한 집에서 병치레 많아 스스로 약을 짓네.”[病中又寄松]라고 읊었다.

다만 그가 의학을 아는 儒醫로서 官醫局에 출입하였음을 짐작케 하는 시가 실려 있다. ‘題官局壁上’이 그것으로, “신선의 학 거듭 오니 세월은 더디고 / 우잠은 동쪽 언덕에 한참이나 서 있네. (중략) 백년의 거취 煙霞 밖에 있으니 / 반평생 알려진 헛된 명성, 우습기만 하구나”라고 노래 불러 그가 관의국에 출입하며 명성이 있었으나, 마음은 늘 東班의 벼슬을 기다리며 포부를 감춰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평소의 교우관계를 짐작케 하는 것으로 면암 최익현에게 보낸 시가 전한다. ‘次崔參判益鉉京鄕多士韻’이 그것으로 “대궐에 상소 올려 온 세상이 우러러보니 / 몸 바치려는 평소의 뜻, 쇠를 끊을 듯 굳세네. (중략) 한 편 푸른 역사에 어진 풍모 기록되니 / 성상의 마음 밝고 밝으니 묵은 폐단 제거하시겠지”라고 노래하였다. 그가 교류의 폭에 있어서 결코 지방의원의 선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정계의 실력자들과도 교분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와 시를 자주 주고받았던 鰲山 文敬憲은 나이가 들었으나 1880년 翰林學士의 관작에 올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 그와 시를 주고받으며 절친하게 사귀었던 진사 조태윤은 會試에 합격하여 蓮榜에 올랐으며[題進士趙兌潤慶宴], 從姪 錫愚는 대를 이어 사마방목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題進士錫愚慶宴] 그에게 관직은 가까이 있으나 다가서지 못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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