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수 교수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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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교수님을 추모하며
  • 승인 2009.11.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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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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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으로 살다간 강병수 교수님을 추모하며

교수님께서 몹쓸 병마와 싸운 후유증으로 폐렴이 와서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병문안을 하였던 것이 어제였습니다. 1주일 전에 뵈었을 때만 해도 나는 꼭 일어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숨을 몰아쉬는 속에서도 약초 이야기를 하며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손발을 만지면서 아직 못 다한 말씀이 많아 그냥 갈 수 없는데 이렇게 말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에 같이 간 제자들과 울었습니다.

오늘 아침 마음이 뒤숭숭하여 법당에 가서 마음을 달래다 밖에 나와 잠시 상념에 잠겼는데 귀천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교수님, 삶과 죽음의 경계가 찰나라더니 이렇게 허무합니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길을 홀로 가시는 교수님 조금만 더 머무르시며 못 다한 한의학 이야기 하시고 가시지 이렇게 급하게 떠나십니까?
강병수 교수님은 청천강이 바라보이는 함경남도 안주군에서 사과농장을 하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4후퇴 때 온 가족이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였습니다. 경희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한 후 잠시 임상의로 계시다가 본초학에 뜻이 있어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원광대학교 한의대에 적을 두시다가 동국대학교 한의대에 부임하여 한의과대학 학장을 거쳐 정년퇴임하였습니다.

교수님은 초여름에 피는 목단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봉오리가 예쁘고 향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꽃송이를 받치고 있는 청록색의 잎이 있기 때문이라며 주인공이 되기보다 배경이 되어 살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초학을 전공하였는지 모릅니다.

저는 1988년 동국대학교에서 강 교수님을 만나 학문과 인생의 스승으로 21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윤리와 도덕이 있기 때문이며 올바른 醫者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환자의 치료하려면 의사가 먼저 마음공부를 하여야 한다며 참선과 구선활인심법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통 한의학의 명맥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시며 강의 시간에 전통의학의 정신과 역사를 강조하셨고 이것을 정리하여 <전통 한의학을 찾아서>라는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강의 준비는 철두철미 하셨고 학자로서 자세는 엄정하셨습니다. 또 학자는 현장에서 살다가 현장에서 죽어야 행복한 것이라며 현장에서 확인하고 실전에서 효과가 증명되어야 과학이며 학문이 완성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원한 청년을 자처하시며 지난 6월에 곰배령과 8월에 중국에 약초답사를 다녀오시기도 했습니다.

1997년 9월 교수님 제자들이 모여 회갑연을 차려드릴 때 평생을 바친 20만장의 본초 자료들이 유실되면 어떻게 하나 싶어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2002년 교수님께 본초를 배운 제자들을 중심으로 출판비용을 모금한 후 작업을 시작하여 2008년 <臨床漢藥圖鑑>이라는 역작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2009년 문화관광부에서 올해의 도서로 선정되어 한의계 자부심을 살려주었습니다. 증보판에 대한 완벽한 수정을 강조하시며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보름 전 마지막 교정을 보아 출판사에 넘기며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띠로 돗자리 만드는 사진을 이제야 찾았다며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혼자 울고 있는데 주변 사람은 웃고 있고, 죽을 때는 반대로 혼자 웃고 있는데 주변사람이 울고 있어야 잘 사는 인생이라 하셨는데 교수님 지금 웃고 계십니까? 이제 교수님께서는 이승과의 인연을 놓고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 인생이고 나머지는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라 했는데 교수님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해야 되는 저희 제자들은 책임이 너무 무겁습니다. 사람은 없어 봐야 그 빈자리의 크기를 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빈자리는 추수 끝난 들판에서 바람에게 길을 물어야 하는 황망함과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대로 된 본초도감 내고 가면 내 인생의 사명은 다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미치고 죽어야 한다며 열정을 불태우셨는데 말씀처럼 이렇게 가십니까? 교수님의 “이보라우! 이거이 말이야” 하시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이제 막히면 누구에게 물어봅니까?

오롯이 오직 본초학에만 40년 헌신하시며 교수님을 사표로 삼아 저희 제자들은 교수님의 학문을 이어 받아 치열하게 공부하여 한약도감 증보판 내고 환자의 아픈 마음을 보듬는 한의사가 되겠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이승을 소풍한 좋은 추억만 간직 하십시오. 한 평생 참마음으로 올곧게 사신 선한 인연으로 편안히 영면에 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수님 부디 평안 하십시오.

2009년 10월 31일 哀弟子 吳洙錫 哭

오수석/ 인보한의원 원장, 대한형상의학회 부회장, 전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이사

091101-보도-강병수-임상한약도감-별세-본초학-오수석.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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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영 2009-11-03 12:55:14
생각지도 못했는데, 떠나셨다니요. 교수님의 본초사랑과 업적,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인간적인 가름침은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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