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잊혀진 전쟁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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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잊혀진 전쟁 왜구
  • 승인 2009.01.1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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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왜구의 역사에 대한 반론

이 땅에 여러 전쟁이 있어왔지만 왜구의 침탈만큼 끊임없이 지속된 것도 드문 것 같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많은 왜구의 침탈을 우리 역사에서 그다지 심도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이는 전쟁으로의 인식이라기보다는 도적의 무리가 다소간 약탈행위를 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에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이러한 왜구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들의 왜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고려·조선 시대에 침투한 일본인들로 구성된 해적 집단’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현재 일본에서는 왜구를 ‘일본인만이 아니라 고려·조선인과 중국인들도 포함된 다국적민(多國籍民)으로 구성된 해적 또는 해적 활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왜구상(倭寇像)을 수정하고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왜구라는 역사현상을 재평가하고 재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정작 피해자였던 우리는 아무런 연구도 안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은 이에 대한 연구를 저들의 잣대로 마구 재단해 왜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저자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침탈이 극심했던 여말선초의 상황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긴박감이 감도는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즉, 대륙의 중국에서는 원명(元明)교체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제국건설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고, 해양의 일본에서는 남조와 북조의 60년간 이어지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륙으로부터는 원나라 조정의 학정에 반기를 들었던 홍건적의 1,2차 침입(1359년, 1361년)을 겪어야 했고, 해양으로부터는 가마쿠라(鎌倉)막부의 멸망이후 남북조내전(1336~1392) 수행을 위한 저들의 물자와 인력의 확보차원에서 수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 우리 고려는 대륙을 휩쓸던 홍건적을 궤멸시킴으로써, 주원장(朱元璋)의 착실한 기반확보와 천하평정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명나라의 제국건설에 기틀이 되는 역할을 했다. 또한, 해양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왜구를 소탕함으로써 남조(大覺寺統)와 북조(持明院統)가 서로 대립 항쟁했던 60년간의 내전을 종식시켜 무로마치(室町)막부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국난극복을 통해 당시의 위정자들은 의학적 발전도 함께 도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 20년(1371)에 『향약혜민경험방(鄕藥惠民經驗方)』을 찬집하고, 우왕 14년(1388)에 정도전(鄭道傳)은 『진맥도결(診脈圖訣)』을 찬술하였고, 태조 2년(1393)에 김희선(金希善)은 각도에 의학원(醫學院)을 설치함과 동시에 『향약혜민경험방』을 학습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으며, 태조 3년(1394)에 권중화(權仲和)는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을 편찬하고, 태조 7년(1398)에 김희선·조준(趙浚)·권중화·김사형(金士衡) 등은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을 편찬하였으니, 모두 이 시대의 빛나는 정치가이자 뛰어난 의학자들이다. <값 2만2천원>

金洪均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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