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00] 身機踐驗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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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00] 身機踐驗②
  • 승인 2009.01.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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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전달과 의학문화의 교역

지난 호에 이어 또 하나의 번역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신기천험』 권8의 ‘酸醋’는 화학에서 말하는 아세트산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이 약성이 기록되어 있다.

“……아세트산은 성질이 차고 수렴시키는 효능이 있어, 欬血이나 吐血을 멎게 한다. 몸에 열독이 심할 때 아세트산을 마시면 풀린다. 괴혈병으로 몸이 허약하여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脚瘡으로 피가 날 때 아세트산을 마시면 수렴된다. 아편에 중독되었을 때 먼저 토하게 하는 약을 복용하여 구토시킨 뒤, 아세트산을 마시면 아편의 해독을 면할 수 있다. 목구멍에 병이 생겼을 때는 뜨거운 아세트산을 병 속에 넣고, 입을 병 입구에 대고 그 냄새를 흡입한다. 타박상에는 아세트산으로 씻으면 화끈거리고 아픈 것을 감소시킨다. 탕화상에 피부가 짓무르기 전에도 쓸 수 있다. 눈병으로 오랫동안 분비물이 나올 때는 아세트산으로 씻는다. 재나 티끌이 눈에 들어갔을 때 아세트산으로 씻으면, 재를 없애고 독을 풀어준다.”

또 용법에 대해서는 “대개 1돈에서 4돈까지 내복하되 혹 醋酸鉛을 더해 몇 차례 복용하고, 겉에는 아세트산 2~3냥에 알콜 1냥과 물을 배합하여 씻는다. 만약 피부를 문질러 열이 나게 하면 반대자극[引病外出]이 되는데, 아세트산과 반묘 분말을 8:1의 비율로 쓰면 더욱 좋다”고 하여 마치 본초서에 기재되어 있는 본초약성과 적응증에 대한 조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시 같은 책의 ‘去痰之劑’ 항에는 “가래는 폐에서 생긴다. 폐에 병이 있으면 가래가 많아지며, 숨이 차거나 기침을 하게 되는데, 가래를 배출시키면 병은 저절로 낫는다. 토제를 복용하면 즉시 담이 배출되는데, 병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방법[引病外出]을 써서 安肺시킴으로써 가래를 점차 감소시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항은 ‘引病外出’이라는 용어이다. 일전에 소개한 홉슨의 한역대역어사전인 『醫學英華字釋』에서는 이 용어를 ‘반대자극’을 의미하는 ‘counter-irritants’라는 술어로 소개하고 있다. 반대자극이라는 것은 신체의 어느 부위에 통증이 극심한 경우 통처가 아닌 다른 부위에 자극을 주어 통증을 분산시킴으로써 동통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만약 『의학영화자석』이 없다면 ‘引病外出’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곤란할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의학적인 견해를 번역에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낯선 용어들로 가득한 『신기천험』에서 우리는 최한기의 다른 저작들이 갖는 사상사적 중요성과는 다르게 의학서 번역에서의 특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조선 후기 ‘지식의 재편집’을 통해 이루어진 문헌 가운데에서도 원출처가 서양언어를 漢譯한 서적이라는 데 특성이 있으며, 의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번역과정에 있어서 풍부한 의학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

오늘날 『신기천험』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서양서 번역이 이미 일본으로부터 너무 큰 영향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신기천험』의 정확한 번역작업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구사된 서양언어의 漢譯과 관련된 문헌을 연구하는 데에 시금석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최한기의 원작이 신지식의 적확한 전달을 목적으로 하였음에 주목하고 『신기천험』의 번역에 있어서 정확한 의미파악 및 전달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첫째, 원작자인 홉슨의 생애 연구, 둘째 홉슨의 5종 의서에 나오는 圖解 정리, 셋째 홉슨의 5종 의서와 『신기천험』의 逐字 對校, 넷째 『醫學英華字釋』의 입력과 목록화, 다섯째 대역어 추출과 초벌번역, 여섯째, 『신기천험』에 빠져 있는 도해를 원작에서 추출하여 해당되는 내용에 삽입하고 하나하나 대조하여 점검, 일곱번째 의학지식의 미흡에서 비롯되는 오역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한의학 전공자의 교열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최종교열과 윤문을 진행하는 한편 가독성 평가를 위해 전공자가 아닌 사람을 샘플링하여 모니터링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로부터 접근가능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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