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99] 身機踐驗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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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99] 身機踐驗①
  • 승인 2008.12.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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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의 도입과 번역문화

올해 연구원의 전통의과학현대화 과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로 『신기천험』의 번역을 들 수 있다. 이러저러한 한의계 10대 뉴스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문헌연구 분야에선 빼놓을 수 없는 가치 있는 학술성과라 하겠다.
지난 의사학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중심으로 지난 역사에서 새로운 지식과 문화에 접하고 충격에 빠졌을 조선 지식인들의 고뇌와 이에 대응한 반응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 후기에 들어 사대부 지식계층 사이에선 청으로 부터 유입된 신지식을 접하고 나서 그 요점을 요령 있게 재편집해서 책으로 엮어내는 일이 흔해졌다. 사실상 이러한 풍조로 말미암아 조선후기 방대한 저작들이 출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문헌의 경우, 집필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다름 아닌 원작의 底本이 되는 문헌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문헌의 번역에 있어서도 저본의 ‘보유’가 필수적인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身機踐驗』은 楓石 徐有구(1764~1845)의 『林園經濟志』나 五洲 李圭景(1788~ 1856)의 『五洲衍文長箋散稿』 이상으로 원작에 사용된 저본의 확보가 담보되어야만 번역이 가능한 까다로운 문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저본을 지은 작자의 생애라든가 해당 저본 이외의 참고서 등 관련 자료가 많이 필요한 문헌이다. 이러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우선 『身機踐驗』의 구성 체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신기천험』은 전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과 범례를 제외한 본문의 내용은 대부분 홉슨(Benjamin Hobson, 合信, 1816~1873)이 漢譯한 5종의 西醫書(『全體新論』·『西醫略論』·『婦영新說』·『內科新說』·『博物新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권1, 권2는 『전체신론』, 권3은 『내과신설』을 전제했으며, 권3·4·5·6·7은 『내과신설』과 『서의약론』을 섞어 실었고, 권8은 『박물신편』의 내용을 자신의 견해와 함께 실었고, 권8 속편은 『내과신설』과 『서의약론』의 藥治 관련 내용을 옮긴 것이다.

이러한 『신기천험』구성상의 특성에 따라 우리는 번역에 앞서 정확한 번역대본을 마련하기 위해 저본이 되었던 5종 한역서의서와 對校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5종서에 실린 수많은 圖解가 『신기천험』에는 모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기천험』의 번역뿐만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꼭 필요한 圖解, 예컨대 解剖圖와 같은 경우는 다시 삽입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하는 일에 있어서 난점은 이 같은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홉슨의 5종서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기존에 쓰이지 않았던 생경한 단어와 개념들이 속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용어의 의미가 변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문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변용된 의미를 간파하기 어려운 용어가 산재해 있다.
게다가 홉슨은 한문으로 된 원작을 저술하면서 영문 대본으로부터 번역한 것이 아니라 곧바로 한문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번역자가 생소한 용어들을 만났을 때 『신기천험』이나 5종서 내에서 적확한 용례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의미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藥有以補爲用者, 補精神, 補腦, 補腦髓筋(卽腦氣筋)爲一類, 中國稱補火是也.”라고 한 문장에서 처음 나오는 ‘補精神’의 경우 ‘補腦’·‘補腦髓筋’ 등과 마찬가지로 補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충하다는 의미의 ‘補하다’가 아니라 ‘자극하다’의 의미에 가깝게 쓰였다.
뇌기근은 ‘nerve’ 즉 오늘날의 신경을 말한다. 그래서 ‘補精神’의 경우, 주석에 ‘stimulant(각성제)’라고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보한다’는 말은 ‘자극하다’ 혹은 ‘진작시키다’라는 의미로 풀어야 한다. 이는 초기 한역서의서에서 사용된 ‘補’의 개념이 우리 전통에서 사용된 의미와 사뭇 다르게 사용되었음을 말해 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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