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알 권리인가? 한의계 무기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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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알 권리인가? 한의계 무기력인가?”
  • 승인 2008.07.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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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한약 바로 알리기’ 전국 한의원 배포

한약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의사협회가 제작한 안내책자〈사진〉가 전국의 한의원 등 관련기관에 총 1만1682부가 배포됐다.
안내책자에는 △한약이란 △한약재(의약품)와 식품(농산물)은 무엇이 다르나요 △한약재는 어떻게 유통되나요 △한약재는 어디서 어떤 검사를 하나요 등이 실려 있어 일반인들이 그간 한약재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을 쉽게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책자에 ‘한약재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나요’라는 항목에는 한방의료를 왜곡할 소지가 있는 내용도 존재해 한방의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책자에는 “전국의 한방의료기관에서는 원내에서 사용하는 한약재 목록(원산지 표시) 대장과 시험성적서 등을 원내에 비치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어 사실상 강제 규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비자 알권리 충족을 위한 한약재 관리 지침’ 항목에서는 ▲주요원료 3~4종의 품목과 원산지 고지 ▲고가 한약재(녹용, 사향, 웅담, 인삼 등) 조제시 원산지 고시 등이 포함돼 있다.

얼마 전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 녹용문제가 보도됐다. 한의사라면 모두 어이없어 할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90일이 돼서야 절각하는 국산녹용(사실상 녹각)이 수입녹용보다 우수한 것으로 비춰졌다. 수입에 비해 국산이 훨씬 비싸지만 ‘사슴의 어린 뿔’을 ‘녹용’으로 정의하고 있는 한의학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맞지 않는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국산이 더 좋다”는 국민의식이 뿌리 깊게 내려있는 상태에서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한약재의 원산지 표기는 진료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허위로 적어 넣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번 조치를 따르자니 가뜩이나 줄어든 첩약 환자들이 더 줄 게 뻔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게 일선 한의사들의 반응이다.
책자에 나와 있는 ‘원내 사용 한약재 목록’ 샘플에는 그런대로 국산이 많이 예시돼 있다. 하지만 일선 한의원의 실상은 다르다. 국산이라고 적혀 있는 오미자·구기자도 수입산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의원에서 비치한 목록과 약재를 비교하면 언제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고, 책임을 제조사나 약업사에 떠넘긴다고 해도 진료에 차질을 빚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가 제일 중요한 의료에서 원산지 표기가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라는 평가다.
한의협이 책자를 제작해 배포한 것에 대해 한 관계자는 “발가벗고 항복하라는 것을 속살만 살짝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고 그나마 큰 회오리바람을 피하기 위해 이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농산물은 下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한약 원산지를 적은 ‘한약 바로 알리기’ 책자가 과연 한방의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다.
제약회사에서 만들어 내는 일반의약품 속에 들어 있는 한약재의 원산지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상 훨씬 간편했는데도 불구하고, 한의원에서 의료인이 처방하는 약부터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일 뿐만 아니라 한의계의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다.

민족의학신문 이제민 기자 jemin@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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