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韓藥 여행스케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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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韓藥 여행스케치(7)
  • 승인 2008.03.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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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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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의 4대 회약 - 회산약, 회지황, 회우슬, 회국화
허난(河南)성 성도인 정저우(鄭州)는 오랜 세월 중원문화권에서 넉넉한 어머니 품이 되었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중국 대륙을 고속도로로 남북과 동서로 잇는 교차지점인 정저우는 교통의 요지이다.
중원지역인 허난성의 4대 회약(怀藥,懷藥)을 찾아 가본다. 4대 회약이라 함은 정저우에서 90km 떨어진 자오쭤(焦作)시 주위에서 생산되는 산약, 지황, 우슬, 국화 4종류의 한약을 말한다. 즉 회산약, 회지황, 회우슬, 회국화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회(怀)’자는 고유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북위시대 이후에는 회주(怀州)로 부르다가 원·명·청 삼대에는 회맹로(怀孟路), 회경부(怀慶府)로 바꾸어 불러 온 것으로, 지금의 자오쭤시 부근의 원셴(溫縣), 우즈(武陟), 보아이(博愛), 멍저우(孟州), 친양(沁陽) 일대를 아우른 이름이다.
필자와 함께 한약 조사단 일행이 찾은 자오쭤시 주위는 기온이 연평균 12~15도이고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어 4대 회약을 재배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1066년, 주 무왕(周武王)은 군사들을 이끌고 후셴(戶縣)을 출발해 지금의 자오쭤시인 회부(怀府)에 이르렀다. 6월에 이르러서 더위가 너무 심하여 군사들이 견디기가 어려웠고 더구나 먼 여정을 행군하여 80~90%는 병이나 피로로 쓰러졌다.
회부 백성들은 병사들의 질병소식을 듣고 집에서 심은 국화, 지황을 병사들에게 볶아 먹여 더위를 해결하게 하였으며, 우슬을 끓여서 근골을 조절하게 하고, 산약을 주어서 체력을 보충하게 하였다.

수일 후에 군사들의 원기가 크게 진작되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다. 무왕은 즉위한 후에 회부 백성의 온정에 보답하기 위해서 백관들을 이끌고 친히 회부에 가서 상을 주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그때 받았던 신기한 한약으로 ‘4대 회약’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 이로 인해 4대 회약의 명성은 멀리 전해지고 역대 황실의 조공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자오쭤시 외곽지역에 있는 산약 재배지를 둘러보았다. 면적은 한국 평수로 3300평 정도이다. 드넓은 밭은 온통 산약을 재배 중이다. 입구에는 ‘4대회약 농업표준화시범기지’라고 쓴 돌로 제작된 표지판이 보인다. 대형 입간판에는 ‘생산량이 풍부하고 질이 좋으며 저항력이 강한 본고장의 품종 선택’ 등 무공해 산약의 생산기술과 표준화 관리 규정이 적혀 있다.

밤늦게 찾아간 지황 재배지도 역시 면적이 어마어마하다. 길옆에 위치한 지황 밭에는 황토 먼지를 쓴 지황들이 기운차게 자라고 있었다. 이 회약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약효를 공인받았고 현재도 지역을 상징하는 약용 작물로 중원 땅 아득한 들판 저 너머까지로 지경(地境)을 넓혀가고 있다.

회약 가공회사도 산지 근처에 있었다. GMP 시설이 되어 있는 이 회사에선 4대 회약을 응용한 다양한 가공 제품을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은화와 차 제품도 함께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4대 회약은 재배지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또 외국에 까지 ‘회’라는 글자 한 자가 널리 알려진 브랜드로 격상되어 앞으로도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한 몫을 충실히 하리라는 확신을 이번 한약조사 방문에서 가지게 되었다. <격주연재>

글ㆍ사진 = 박종철 교수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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