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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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6)
  • 승인 2008.03.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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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입덧 같은 통과의식 - 고소증세

고도가 높은 곳을 적응기간 없이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경우는 일정한 순응기간이 필요하다. 공기가 희박한 만큼 빛은 눈이 부셔서 온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든다. 잠시 나른해지다보면 영혼조차 말라붙게 할 정도로 메마른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풍과 한과 조가 어우러져 있다. 잠시 움직임만으로도 숨 가쁘게 한다. 이것은 라싸를 첫 방문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의식인 것 같다.

라싸에 도착한 첫날 한 대원이 점심식사를 하고 머리가 빙빙 도는 현기증, 극심한 두통, 발열, 몸살, 메스꺼움 등을 호소한다. 폐금보격(폐의 수렴을 강조)과 위화보격(음식이 잘 썩게 위의 화를 도와 줌)으로 처치하고 나니 구역질을 하면서 변기를 잡고 토하고 있다. 남자들이 입덧을 하고 있으니 참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나 그가 깊은 잠에 빠지자 조용하고 한가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숙취와 저산소가 문제였던 그 대원은 도착 당일 홍역을 치르고 나서 원정기간 내내 단 한번도 고소증세를 호소하지 않았다.

필자가 대원들에게 알려준 고소적응법은 아주 효과가 좋았다. 많은 산악인들에게 글이나 강의를 통해서 알려준 방법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서서히 꾸준히 움직일 것’, ‘가슴을 활짝 펴고 걷거나 누울 것’, ‘보온 특히 머리보온에 신경 쓸 것’, ‘초기에 불면증을 겁내지 말 것’, ‘가벼운 증상에 신경 쓸 것’ 등이다.

이경주, 권영학, 김연수, 권오상 대원은 거리 구경과 고소적응 겸 삼삼오오 뒷짐을 지고 나선다. 몽블랑(4810m) 근처에서 6개월 산악훈련을 받은 김연수만 자신감이 넘친다. 라싸 시내는 활기차지만 우리 한국처럼 템포가 빠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고소에 처음 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푸른 나무 곁으로 끌려간다. 산소가 좀 더 많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라싸의 시내에는 원주민들보다 한족이 더 많다. 중국인들의 서남공정의 인해전술전략에 의한 것이다. 현재 이곳은 시짱(西藏) 자치구라고 하지만 중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이다. 일제시대에 조선에 진주한 일본인들의 지위와 조선인의 지위를 비교해 보면 원주민들의 지위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이다. 그들의 얼굴은 우리보다 훨씬 맑고 밝으며 평화롭다. 마니휠을 돌리며 ‘옴 마니 반메 훔’이란 眞言을 외우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게도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는데 이들에겐 분노가 없다.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Do resist everything to suppress)’고 말했던 체게바라의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아직 인연이 안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가니 언어도단이란 별명을 가진 권오상 기자와 이경주 대원은 참새처럼 조잘조잘 입이 바쁘다. 아직까지 대부분 머리는 조금 아프다고 하지만 식욕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다들 잘 먹는데 오지에 들어가면 이 사람들의 왕성한 먹성을 어떻게 감당하지!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된다. MTB 전 국가대표 권영학은 식사를 전폐하고 산소를 마시고, 처음 고소에 온 철녀 이경주도 따로 산소를 마시고 있다. 고소에 오면 식욕이 떨어지는데, 이 여성 대원은 식성이 너무 좋아 몰래 걱정을 많이 했다. 음식이 산화(소화)되려니 위장으로 산소가 많이 가버리고, 뇌로 산소가 못가니 골이 때린 것이다. 고산병은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갑자기 원정대 숙소가 중환자실로 변한다. 사실 산소라고 하지만 압축된 공기를 코에 꽂고 숨을 쉬는 것이다.

필자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으로 몸을 내팽개치면서 고소증세를 시험해 몸으로 많이 느껴 보았다. 고소증세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경험상 흉추가 굽은 사람은 고소에 문제가 아주 많다. 흉추가 굽은 사람은 골반의 전후가 안 맞아 치골은 앞으로, 후상장골극은 뒤로 튀어 나온 사람들이다. 이봉주, 칼루이스, 그리피스조이너스 같은 역대 육상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지나치게 가슴을 펴고 뛴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세가 폐활량이 최고 좋은 자세이다. 당연히 고소에서는 그런 육상선수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들 자세를 타산지석 삼아서 고소보행법에 응용을 해 보았다.

고소에서 보행법은 엉덩이를 봉긋하게 하고 배를 집어넣으면 기본적으로 가슴이 펴진다. 이 때 가볍게 가슴을 더 펴고 뒷짐을 지고 손등으로 후상장골극을 전상방으로 눌러주고 걸으면 된다. 시선은 상방 15도 또는 멀리 보면서 걷는다. 이렇게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펴면 폐활량이 가장 커진다. 이 보행법은 등산할 때도 가장 유리한 자세이기도 하다. 평상시 이렇게 자세를 펴고 걸어서 체중이 5, 6kg이 빠진 사람도 많다. 오장육부가 눌리지 않고 잘 교류하기 때문에 쌓였던 군살들이 빠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소보행법은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좋은 보행자세이다.

선수들 컨디션을 봐서 하루만 쉬려고 했는데 불가할 것 같다. 라싸에 있는 그 유명한 포탈라궁(세계 7대불가사의)과 조캉사원 등은 꼭 보고가야 할 것 같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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