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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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3)
  • 승인 2008.02.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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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一衣一鉢 자전거 세계일주

왜 문명이 발달되고 가볍고 좋은 장비가 나오는데 사람들의 짐은 더 많아지고 무거워질까? 짐을 줄이는 것은 자기의 안일을 버리는 것과 직결된다. ‘버리고 떠나기’는 수도승의 수행 같지만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만고의 진리’이다.
스님들의 무소유처럼 우리 모든 나그네들은 가능하면 작게 소유하고 길을 떠날 때 좀더 많은 각(覺)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은 원정준비로 지긋지긋하게 짐과의 전쟁을 치른 사람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 있다. 실제 원정은 빙산의 일각이다. 물속에 잠겨있는 9할이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패키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짐만 달랑 가져오니 이 말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등반을 떠나는 원정대에서는 모두 같이 준비를 하면서 보이지 않는 팀워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경량화를 통해서 빠른 이동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서 장거리여행에 짐 싸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늘 무게가 초과된다. 아는 것이 많다보니 준비물도 많다. 이런 것을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해야 하나.

개인 짐으로 바라크라바(Balaclava; 목출모), 버프(Buff; 다용도 두건), 고글(주야간용 렌즈교환이 가능), 넓은 챙모자, 저지(자전거용 상의), 방풍 재킷, 자전거용 팬츠(반바지, 긴바지), 일반상하의, 양말, 바느질세트, 영한한영사전, 기록도구, 벨트색, 자전거 장갑, 슬리퍼, 경등산화, 자전거용 신발 등이 있다. 장비로는 자전거와 수리도구, 펌프, 헤드랜턴, 물통, 휘발유버너, 코펠, 연료, 카메라, 지도 등이 필요하다. 식량으로 김치, 쌀, 고추장, 된장, 젓갈, 라면, 간식(초콜릿, 여러 가지 사탕), 육포와 어포(한가위 제사용), 술 등을 준비했다.

KOMSTA에서 빌려온 의료봉사용 진료 가방과 가운이 있다. 이 짐 이외에도 중간 중간 8명의 분대원이 먹을 식량과 텐트, 티베트 현지인을 위해 모아온 헌옷 등 무게만도 엄청나다.
여행시 짐의 무게는 ‘집착의 무게’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준비 없이 어떻게 자전거로 티베트를 횡단할 수 있겠는가? 준비는 당연하지만 그래도 짐은 너무 많았다고 스스로 반성한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한 최초의 사람은 미국의 토마스 스티븐슨(T. Stevenson)이다. 그는 세계일주를 꿈꾸고 1884년 미국서부 오클랜드를 출발하여 자전거를 타고 동부 보스턴으로 향한다. 그가 살았던 오클랜드에는 현재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천신만고 끝에 미 대륙을 횡단하여 보스턴에 도착한 그는 배를 타고 다시 영국으로 갔다. 그리고 유럽과 중동, 아시아를 지나서 홍콩과 일본을 들렀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서 2년 4개월만인 1886년 12월 샌프란시스코로 귀환한다. 총 주행거리는 2만 1600km이지만 이 당시 그의 세계일주는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버금가는 기념비적인 업적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1870년경에 영국의 제임스 스탠리(James Stanley)는 “Penny Farthing”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자전거를 발명했는데, 앞바퀴가 매우 크고 뒷바퀴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그 자전거는 ‘빈폴’이라는 옷 상표와 똑 같아서 ‘빈폴 자전거’라고도 불린다. 찰리 채플린 같은 실크햇에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도 이 자전거를 탔다. 이 자전거는 ‘보통(Ordinary) 자전거’라고 불렸는데 ‘페니 파딩(Penny-Farthing)’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페니와 파딩은 영국의 동전으로 페니는 원이 큰 앞바퀴, 파딩은 원이 작은 뒤 바퀴인 셈이다. 이 자전거는 턱에 걸리거나 급브레이크를 잡으면 몸이 곧잘 앞으로 날아가 아주 조심해서 자전거를 타야 했다.

그래서 나중에 지금 같이 앞에 핸들이 있는 자전거는 페니파딩에 비해 매우 안전해서 안전자전거(Safety Bike)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페니파딩은 생각보다 훨씬 빨라서 길만 괜찮으면 하루에 80km 이상은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티븐슨은 이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면서 휴대한 장비는 셔츠 한 장과 양말 그리고 텐트 겸 이불로 쓸 비옷 한 벌만 가져갔다고 한다. 그는 미 대륙횡단 도로가 없던 시절이라 철도를 따라 갔다고 한다. 터널을 통과할 때면 기차가 시커먼 연기를 품으며 달려오면 터널 벽에 바짝 붙어서 피했다고 한다. 그는 동양의 선승들이 출가시 일의일발(一衣一鉢)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一衣又一鉢 出入趙州門
踏盡千山雪 歸來臥白雲<碧松智嚴>
옷 한 벌 발우 하나로 조주의 문하를 드나들었네
모든 산 눈 다 밟고 돌아와 흰 구름 위에 누워있네.

벽송지엄의 시는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해서 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일의일발의 여행, 우리 같은 하근기(下根氣)들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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