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치료영역, 교제(膠劑)로 넓힌다 <전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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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치료영역, 교제(膠劑)로 넓힌다 <전창선>
  • 승인 2008.01.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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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관절염, 골다공증, 만성 소모성 질환 등에 응용

“동물이 동물답게 움직이는 것은 ‘생명의 물’이 담긴 교원질 때문이며 이 ‘생명의 물’을 보충해주고 음형(陰形)을 복구해 주는 것이 교(膠)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감을 쫓아 질주하는 날렵한 표범,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달리는 100미터 단거리선수의 역주, 이들이 힘차게 뛰는 모습을 슬로우비디오로 보면 ‘몸’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역동성과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한곳에 뿌리박고 곧게 자라는 植物과 달리, 動物은 평생을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동물이라고 한다. 물론 움직임을 포기함으로써 永生에 가까운 생명을 획득한 식물에 비해 그 수명은 짧지만, 마음껏 움직이며 천지를 내집삼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면 동물을 동물답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몸’의 기본 要素(성분, 특질, element)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교원질(膠原質)이다.
교원질은 섬유상 단백질로서 피부, 관절 연조직, 연골, 뼈뿐만 아니라 각각의 조직과 기관을 지지, 보호하는 결합조직의 주성분이다. 만일 팔이나 무릎 관절에 교원질이 없었더라면 중국 영화에 나오는 강시처럼 통통 튀면서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육상선수의 힘찬 도약, 피겨스케이팅이나 발레의 아름다운 몸짓도, 전신에 분포하면서 정구공 같은 탄력으로 동물의 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교원질 덕분이다.

아쉽게도 오장육부의 화완(和緩)한 조화를 추구해 온 한의학에는 교원질에 대한 的確한 대체 표현이 없다. 교원질은 말 그대로 ‘교로 바뀔 수 있는 질료’라는 뜻이다.
콜라겐(collagen)을 교원질로 번역할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던 교(膠)라는 단어의 도움을 받아 造語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교는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다. 교란 동물성 약재를 오랫동안 고았을 때 나오는 묵같은 형태의 결과물로서, 중요한 한약 劑型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살코기는 아무리 오랫동안 고운다고 해도 묵처럼 엉기는 경우가 없다. 결합조직이 풍부한 부위를 끓여야 교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뼈나 도가니, 내장 등으로 고은 교는 음식으로, 껍질로 고은 교는 약으로 응용해왔다.

인체에서의 결합조직은 배아기 중간엽에서 발생하는데, 배아 발달기에 관찰되는 중간엽은 젤리처럼 균질한 매트릭스(matrix, 기질)로 이루어져있다. 매트릭스는 ‘가운데’ 있으며, ‘묵’처럼 엉겨 자신의 모습이나 뚜렷한 個性이 없다.
매트릭스는 몸의 물질적 근원인 혼돈(混沌)으로 추상(抽象)된다. 나중에 결합조직으로 발달한 후에도 다른 조직들을 서로 묶어주고 지지하거나 보호하며,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조직들의 빈 공간을 채우는 토(土)의 역할을 한다.

몸무게를 대비해서본다면 결합조직의 비율은 아기일 때가 가장 높다. 어린 아기의 몸이 물덩어리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풍부한 교원질 덕분이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간다는 것은 몸무게 대비 교원질의 비율이 줄어들고 교원질이 말라간다는 의미이다.
교원질은 ‘생명의 물’을 담고 있다. 늙으면서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뼈나 관절이 약해지는 것은 섬유상 단백질이 안고 있던 바로 이 ‘생명의 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서 생기는 대부분의 퇴행성질환에 교원질이 연관된다. 골다공증과 퇴행성관절염을 예를 들어보자.
뼈는 모래 같은 칼슘을, 아교풀과 같은 교원질로 반죽하여 단단한 막대처럼 만든 조직이다. 뼈가 가볍고 약해 보이지만, 적당한 탄성을 가지면서 잘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교원질의 도움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모래를 움켜쥐고 있던 아교풀이 탄력을 잃고 약해지면 모래알은 흩어지고 줄어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골다공증이다. 교원질은 무시하고 아무리 많은 칼슘을 복용해도 골다공증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퇴행성관절염도 마찬가지이다. 관절을 이루고 있는 연골이나 인대, 건 등은 모두 단단한 섬유조직으로서 대부분 교원질로 이루어져있다. 관절이 약해지고 염증이 반복되면서 교원질에 함유된 ‘생명의 물’이 말라버리고 섬유상 조직이 나뭇껍질처럼 거칠어진 것이다.

양은냄비 구멍나면 양은으로 때우고, 삼베옷 헤 지면 삼베로 기운다. 나이가 들면서 몸속의 결합조직이 쇠약해지고 교원질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신선한 교(膠)로 다시 채워주는 것이 최선이다. 교는 음형(陰形)을 복구하고 ‘생명의 물’을 보충해준다. 퇴행성관절염이나 골다공증뿐만 아니라 만성 소모성 질환, 허로(虛勞)에 의한 출혈성 질환 등에 두루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膠)중의 대표는 아교(阿膠)다.
청나라 때 황실에 공납(貢納)하던 최상품의 아교를 구천공교(九天貢膠)라 하였는데, 구천공교는 황실에서 특선한 검은 당나귀 12마리를 冬至에 잡아 그 가죽을 무려 8일동안 자(煮)하고, 9일째 네모로 절편하여 陰乾한 것이다. 아교는 補陰의 聖藥으로서 인삼, 녹용과 더불어 최고의 보약이었으나 高價로 인해 常用하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아교와 더불어 녹각교, 구판교, 별갑교 등등 여러가지 교제(膠劑)들의 제조가 과거보다는 훨씬 용이해졌다. 물론 교의 제조과정이 까다롭고, 불(煮)과 약재를 다루는데 많은 정성과 장인정신이 필요하지만, 각종 퇴행성질환까지 한의학의 치료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에 한 중견 제약회사가 7년여에 걸친 노력으로 산동동아아교(山東東阿阿膠)의 아교를 수입하여 출시했다. 산동 동아현(東阿縣)은 아정수(阿井水)의 고향이자 아교의 세계적 주산지인데, 엄격한 GMP시설하에 만들어진 정품아교라고 한다. 교를 가장 중요한 치료수단으로 常用하는 한의사의 한사람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창선
서울 강남 튼튼마디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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