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창선의 세상보기] 청룡의 승천 - 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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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전창선의 세상보기] 청룡의 승천 - 마황
  • 승인 2007.10.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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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황의 瞑眩 현상을 부작용으로 오해하는 한심한 세상”

폭포가 있거나 늪이 있으면 의례히 이무기 전설이 있다. 이무기는 물속에서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수도를 하다가, 득도를 하면 마침내 하늘로 승천한다. 하늘로 승천하는데 성공하면 이무기는 용으로 변하고, 승천하지 못하면 늪 속에 남아 나쁜 짓만 하는 못된 흉물로 살아가게 된다.

이무기가 물속에 사는 이유는 순양체(純陽體)이기 때문이다. 태아가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자라듯, 물속에서 북방수기(北方水氣)의 보호와 응고(凝固)를 받으며 자신의 양기를 충양(充陽)하다가, 때가 되고 충분히 다져지게 되면 강력한 목기(木氣)로 물위로 솟아오르게 된다. 을자(乙字)를 그리며 튀어 올라 용이 되는 날, 하늘은 이에 응하여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과 번개를 때리게 된다. 빅뱅처럼, 천지개벽처럼, 애벌레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알을 깨고 부화되는 새처럼.

○… 인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전신의 양기가 순조롭게 통창(通暢)되지 못해 유폐되어 버리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꼴이 된다.(陽氣불鬱在表 陽氣불鬱不得越-傷寒論) 여기서 양기는 맑은 목기(木氣)를 말하는데, 목기가 유폐되면 곤(困)이 되었다가 결국 곤열(困熱)로 바뀌어 몸속에서 온갖 못된 짓을 하게 된다.
양기가 유폐되면서 목기의 조달(條達)을 막아 불울(불鬱)하게 만드는 원인은 다양하다.

상한론이 저술되던 후한 시절(AD 200년경)에는 끊임없는 전란과 역질이 창궐하면서 주거환경이 열악하였다. 그래서 육음(六淫) 중 한사(寒邪)라는 발병인자에 주목하였고, 한사를 중심으로 양기불울(陽氣불鬱)을 관찰하였다. 즉, 한사가 태양경을 침습하여 주리(주理)가 닫히게 되면, 양기도 갇히게 되는데, 그 결과 脈浮緊 無汗 發熱身疼痛 등의 증상이 발현하게 된다. 이때 땀구멍을 열고 갇힌 양기를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마황이다. 그래서 마황은 ‘푸른 목기’를 의미하는 ‘청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상한론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의 주거환경과 식생활이 점차 개선되고 안정되면서, 발병인자는 자연스럽게 환경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지게 된다. 양기불울의 주원인이 한사에서 환자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이동한 것이다.
오늘날 환자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양기를 유폐시키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과도한 피하지방이다.

피하지방이 불필요하게 많이 쌓여있으면, 목기는 그 피하지방을 뚫고 나가기 힘들어진다. 한사가 태양경을 속박하듯, 두터운 지방층이 외투처럼 싸고 있어 양기불울의 각종 증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체지방이 지나친 비인(肥人)의 치료는 유폐된 양기의 구출이 급선무이다. 땀을 잘 흘려주는 비인은 그나마 양기가 통창(通暢)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무한(無汗)한 비인이 각종 양기불울의 증상을 호소한다면 급히 발표(發表)하여 땀구멍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 마황<사진>은 한법(汗法)을 통하여 양기를 구출한다. 마황도 청룡이지만, 갇혀있던 양기(이무기, 困熱)도 땀으로 통창되어 발표(發表)되면 청룡이 되는 것이다.
한법은 토법, 하법과 더불어 대표적인 공법(攻法)이다. 공법에는 당연히 명현(瞑眩)이 발생하는데, 명현이란 약불명현궐질불추(藥不瞑眩厥疾不추)라고 하여 이미 은대(殷代)에서부터 숙지해오던 현상이다. 특히 상한방(傷寒方)을 쓰면 빠른 속효만큼 다양한 명현도 경험하게 되는데, 한하(汗下)의 공법이 많기 때문이다.

金궤要略의 백출부자탕 조문에도 ‘환자가 어찔어찔해지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백출 부자가 피부 속으로 돌아다니며 水氣를 몰아내는데, 아직 수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명현의 예를 밝히고 있다. 비유하자면 도랑을 치는데 뻘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방청소를 하는데 먼지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한론에서 다섯 가지 전후의 약재로 만들어지던 간오(簡奧)한 처방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약재 가짓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명현은 줄어들게 된다. 마침내 사상방(四象方)에서는 마황과 대황을 쓰는 공법에도 이감위군(以甘爲君)하여 덕(德)으로 다스리게 되니 명현을 부정하고, 명현을 부작용으로 오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마황으로 발한(發汗)하며 양기를 구출할 때는 반드시 명현이 생기게 되는데, 푸른 용의 승천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치게 되는 것과 같다. 억울(抑鬱)되어 있던 양기가 마황의 도움으로 고동치게 되는데, 환자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어찔어찔 어지러우며, 심하면 온몸이 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땀구멍이 열리고 유폐된 양기가 땀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대부분 소실된다. 천둥번개의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이 더욱 청명하고 맑듯이, 마황으로 청룡을 승천시킨 후의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간밤의 비바람은 부작용이 아니고 명현이었기 때문이다.

○… 봉신방의 나타처럼 용을 마음대로 부리는 한의사들은 마황의 특성을 응용하여 현대의 각종 질병을 구제(救濟)할 수 있다. 마황을 통한 한법(汗法)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억울된 양기를 구출하고 목기를 조달시켜 온 몸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과다지방까지 태울 수 있어, 이 시대의 고민거리인 비만(肥滿)과 같은 고질병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마황과 같은 청룡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응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고유 권한이자 지혜다.

한의학의 경전인 상한론은 마황과 계지로 시작된다. 마황을 부정하면 한의학은 설 곳이 없어진다. 마황·부자·대황과 같은 강한 약들이 있기 때문에 한의사 면허가 있는 것이다. 힘 있는 약을 잘 응용하여 각종 고질병을 구제하는 이가 바로 면허 받은 한의사다. 마황의 약성이 위험하다고 한의사를 통제하려면, 먼저 외과의사부터 통제하라. 외과의사의 손에 쥐어진 칼은 더 위험하니까.

전창선
서울 서초구 약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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