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저장하는 기술은 최대한 현장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 음반 제작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믹싱 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이전의 녹음은 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성해야했기 때문에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가 박소소리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음반 녹음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델로니우스 몽크의 ‘Monk’s Music’ 녹음 중에 졸다가 자신의 솔로 차례를 놓친 존 콜트레인을 부르는 소리가 녹음 되었고, 그럼에도 콜트레인이 솔로 연주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이야기처럼.
그랜트 그린의 ‘Idle Moments’ 녹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첫 번째 솔로로 나선 그랜트 그린이 자신의 연주에 도취하여 예정된 시간보다 긴 솔로를 하였고, 이에 질세라 다른 연주자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주를 하여 7분 예정이었던 것이 15분짜리 곡이 되어버렸다. 이후 다시 몇 번의 연주를 했지만 처음 연주만큼 만족스런 연주가 나오지 않아서 15분짜리 곡이 음반에 수록된 것이다.
믹싱의 기술은 음악의 시간과 공간적 제한을 줄여주었다. 나탈리콜과 냇킹콜의 듀엣곡 ‘Unforgettable’은 아버지 냇킹콜이 부른 노래에 딸 나탈리콜의 목소리를 입혀서 만든 곡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듀엣! 감동적인 과학문명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015B의 ‘Sixth Sense’에 수록된 ‘성모의 눈물 For Desperado’에는 유명한 하모니카 연주자 리 오스카가 참여했는데, 리 오스카는 LA에서, 다른 연주자들은 서울에서 각각 녹음하고 서울스튜디오에서의 믹싱작업을 거쳐 완성된 음악이다. 믹싱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음악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굴드의 새 음반 소식을 듣고는 과학문명의 선물이라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재현한 사운드도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굴드가 환생을 해서 자신의 신보를 듣는다면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확대시켜주었다고 좋아할까? 아니면 자신의 예술작품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화를 낼까? SF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는 기분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그래서 인간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과 DJ 배철수의 대화가 귓전에 맴돈다. “예전에는 이봉조, 길옥윤, 김인배 등 연주자들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요즘은 그런 스타 연주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연주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샘플링이 대신하는 제작환경에서, 오랜 기간의 연습과정을 필요로 하는 연주자의 길을 선택하는 음악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턴테이블에 ‘판’을 올렸다. 듣기 싫던 LP의 지글거리는 잡음이 오늘따라 사랑스럽게 들린다.
김호민(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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