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녹음기술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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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녹음기술과 음악
  • 승인 2007.06.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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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새 앨범이 발표되었다. 1982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신작을 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케니 드류의 새 앨범처럼 미발매 음원이 발견되었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컴퓨터 프로그램이 재현한 음악이었다. 제작자는 글렌 굴드가 1955년에 녹음한 바흐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에 나타난 특징적인 타건과 페달링 등의 정보를 ‘젠프’라는 프로그램에 입력하였고, 이를 통해 글렌 굴드를 부활시켰다.

소리를 저장하는 기술은 최대한 현장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 음반 제작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믹싱 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이전의 녹음은 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성해야했기 때문에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가 박소소리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음반 녹음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델로니우스 몽크의 ‘Monk’s Music’ 녹음 중에 졸다가 자신의 솔로 차례를 놓친 존 콜트레인을 부르는 소리가 녹음 되었고, 그럼에도 콜트레인이 솔로 연주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이야기처럼.

그랜트 그린의 ‘Idle Moments’ 녹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첫 번째 솔로로 나선 그랜트 그린이 자신의 연주에 도취하여 예정된 시간보다 긴 솔로를 하였고, 이에 질세라 다른 연주자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주를 하여 7분 예정이었던 것이 15분짜리 곡이 되어버렸다. 이후 다시 몇 번의 연주를 했지만 처음 연주만큼 만족스런 연주가 나오지 않아서 15분짜리 곡이 음반에 수록된 것이다.

믹싱의 기술은 음악의 시간과 공간적 제한을 줄여주었다. 나탈리콜과 냇킹콜의 듀엣곡 ‘Unforgettable’은 아버지 냇킹콜이 부른 노래에 딸 나탈리콜의 목소리를 입혀서 만든 곡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듀엣! 감동적인 과학문명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015B의 ‘Sixth Sense’에 수록된 ‘성모의 눈물 For Desperado’에는 유명한 하모니카 연주자 리 오스카가 참여했는데, 리 오스카는 LA에서, 다른 연주자들은 서울에서 각각 녹음하고 서울스튜디오에서의 믹싱작업을 거쳐 완성된 음악이다. 믹싱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음악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굴드의 새 음반 소식을 듣고는 과학문명의 선물이라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재현한 사운드도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굴드가 환생을 해서 자신의 신보를 듣는다면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확대시켜주었다고 좋아할까? 아니면 자신의 예술작품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화를 낼까? SF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는 기분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그래서 인간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과 DJ 배철수의 대화가 귓전에 맴돈다. “예전에는 이봉조, 길옥윤, 김인배 등 연주자들의 인기가 대단했는데 요즘은 그런 스타 연주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연주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샘플링이 대신하는 제작환경에서, 오랜 기간의 연습과정을 필요로 하는 연주자의 길을 선택하는 음악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턴테이블에 ‘판’을 올렸다. 듣기 싫던 LP의 지글거리는 잡음이 오늘따라 사랑스럽게 들린다.

김호민(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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