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有名有實 - 개념의 창조와 先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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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有名有實 - 개념의 창조와 先占
  • 승인 2007.04.2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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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업사’라는 명칭을 ‘전통 한약사’로 바꾸려는 입법 시도 때문에 또 한 차례 파장이 일고 있다. 이름이 달라지면 이미지가 바뀔 뿐만 아니라, 이름에 담기는 내용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책이나 영화도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제목을 잘 정해야 하고, 참신한 구호가 선거의 판세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有名無實 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개념과 실체, 형식과 내용은 상호 작용 속에서 서로를 규정하게 된다.

韓醫學의 영문 표기는 현재 oriental medicine으로 되어 있고, 한의사는 O.M.D(oriental medicine doctor)로 표기하고 있다. 필자는 한의학의 세계화, 한의학의 정체성 확립 모두를 위해서 이제는 영문 표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orient는 서구에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동, 인도 정도까지를 가리키는 개념이지, 동아시아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영어표기가 국내용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하나의 의학을 영어권의 세계인들에게 인식시키는 수단이라 할 때, oriental medicine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용어이다.

漢醫學이라는 용어는 현재 어디에서도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중국에서는 中醫學(TCM :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북한에서는 東醫學(현재는 ‘고려의학; Koryo medicine’), 일본에서는 漢方醫學(Kampo medicine)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동일한 漢醫學에 뿌리를 두었지만, 중의학·일본 한의학·한국 한의학은 실제 임상과 이론에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한의학이 아무리 중의학과 다른 고유한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도, TCM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자신을 표현한다면 그 점을 세계에 인식시키기 힘들다.

韓醫學을 TKM(Traditional Korean Medicine), 한약을 KHM(Korean Herbal Medicine), 침구치료를 KA(M)(Korean Acupuncture 혹은 Korean Acupuncture and Moxibustion)로 표기하는 것에 관해 한의학회 차원의 검토와 결정이 있었으면 한다. 물론 학교 명칭이나 면허 표기까지 달라져야 하므로 번거로운 일들이 많겠지만, 영문 논문과 한의학 소개 책자들에 그런 표현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검색어로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어야 한국 한의학의 실체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방 병명을 일반화시키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황제내경>의 ‘治未病’에서 유래한 未病 개념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보완대체의학에 호의적인 의사들이 적극 도입하여 한국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질병과 건강의 중간 상태인 半건강, 혹은 기능성 질환의 단계를 잘 표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생, 예방의학의 강점을 가진 한의학의 원리이며 특징인 개념 하나가 의사들의 용어로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병으로 인식되지 않던 것이, 질병명과 진단기준을 갖추게 되면, 치료의 대상이 되는 질병으로 실체를 가지게 된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만성피로증후군, 화병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발달지연 아동을 한방으로 치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의학에서는 五遲, 五軟이라는 병명으로 오래 전부터 치료를 해왔다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한의학의 질병명, 변증명을 적극적으로 발굴, 사용하여 대중화시키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양한방 협진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고, 그 실체를 가지게 될수록, 의료일원화라는 주장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양방의 counter part로서의 한방의 위치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의사들이 많다. 많은 한의사들은 ‘의료 일원화’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쾌하게 생각하고, 금기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일원화 반대’나 ‘의료이원화 유지(?)’라는 것 보다는 한의계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국 의료의 모습을 새로운 개념으로 만들어 주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독자 여러분의 지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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