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中 동북지역에 닻내린 한의학을 찾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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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中 동북지역에 닻내린 한의학을 찾아(1)
  • 승인 2006.12.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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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 투영된 朝醫學을 만나다

2006년 11월 23일 오전 11시 중국 연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한국행 국제선 말고는 모두 국내선뿐인 조그마한 시골공항이다.
이번 중국동북지역 출장은 올해 9월 한국한의학연구원과 중국중의과학원이 ‘해외소재 한국의학 관련 지식자료 조사연구’(2006년도-중국동북지역 한국의학 관련 지식자료 조사연구)라는 이름으로 협약한 공동연구과정의 하나이다.
협약의 기본내용은 동북지역 주요 도서관과 기관에 산재해 있는 한국한의학의서의 판본연구이며, 동시에 근현대 한반도에서 중국의 동북지역, 당시 만주 간도 등지로 건너간 조선의 지식인들, 그중에서도 의료인들의 활동 및 자취도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명실상부한 공동연구이기 때문에 중국측에서도 실질조사팀을 꾸렸고 한국측에서도 10월중순에 미리 50일간의 체류일정으로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오준호 선생을 파견하였으며, 11월말에는 필자가 직접 조사차 떠난 것이다.
중국측의 연구는 동북지역 수십 개의 도서관을 스크리닝해가면서 한문으로 된 한의학자료 즉 『東醫寶鑑』이나 『濟衆新編』 같은 자료를 도서관 및 주요기관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것이고, 필자의 주목적은 조선족거주지를 중심으로 조선에서 건너와서 활동한 의사들에 대한 탐문조사 및 자료수집이었다.

사전정보가 거의 없는 조사작업이었기 때문에 정 안되면 무작정 가서 부딪쳐보겠다는 심정으로 있었는데, 마침 한국에서 다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李成元(74)이란 분을 알게 되었다. 이분은 일제시대 김좌진 장군의 휘하 모 연대장으로 독립훈장을 받은 이정(李楨) 장군의 아들로 1998년 한국으로 귀국한 조선분인데, 흑룡강성 佳木斯市 근처 조선족자치구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했던 소아과전문의이다(민족의학신문 587호 11월20일자 참조). 이분과의 몇차례 면담을 통해 이번 출장의 여정지를 吉林省 延吉市, 黑龍江省 牡丹江市와 佳木斯市로 대략 정하고 출발했다.

마침 중국측 공동연구자들도 동북지역을 조사 중이었는데, 중국중의과학원 鄭金生 교수팀은 연길, 장춘, 심양, 대련 등 주요 도시들의 기관탐방조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북경중의약대학 梁永宣 교수팀은 조선족의 주요 거점지인 연길을 집중조사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양영선 교수팀이 연길에 있을 때 내가 도착한 것이다.
점심을 먹고 그날 오후에는 연변민족의학연구소 전임소장인 鄭松男씨를 만났다. 지금은 이미 은퇴해 있지만, 연길에 延邊民族醫學硏究所를 세우고 부속병원인 朝醫病院을 세우는데 일조한 이른바 창립공신인 셈이었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李濟馬 선생이 함경도출신이며 朝醫學은 사상의학의 내용을 기초로 만들어진 의학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한국의 사상의학회와는 교류가 많았고 2005년에는 북한 금강산에서 국제학술대회까지도 개최하였다.

알고 봤더니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조선족 소수민족의학에 관한 자료는 거의가 이분의 손을 통해서 나온 것들이다. 직접 집에까지 데리고 가서 있는 자료를 보여주면서 필요하다면 가져가란다. 이러한 분들이 직접 수집한 자료 외에 현지에서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반의 조선족 관련자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종이로 된 자료는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많이 없어졌으며, 이곳 같은 시골지역은 불쏘시개로 그 이전에 없어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학문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대가의 풍모와 식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들과 딸을 한국에 보내고 쓸쓸히 손자를 돌봐주며 지내는 힘빠진 노인의 모습이,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무척 애잔해보였다.

연길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圖們市에 갔다. 도문은 연길에서 차로 40여분이면 가는 북한과 중국과의 변경도시이다. 접경지역은 두만강을 사이로 북한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관광지이다. 더욱이 러시아와도 멀지않은 지역이기 때문에 한때는 중국정부에서 경제특구로 주목했던 곳이며 북한의 나진선봉경제특구와도 멀지않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과의 왕래가 끊겨 거의 스산할 정도였다.

처음 들른 곳은 도문시 중의병원이었다. 혹시나해서 무작정 찾아간 곳이지만 40대초반의 崔淸松이라는 주임의사가 우리를 맞아준다. 조선의학 관련자료를 찾는다고 했더니 여기는 별다른 게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조선족이며 중의학을 배웠지만, 사사를 통해 조의학을 조금 배워 이곳에는 나름대로 유명세가 있다고 한다. 얼굴과 체형을 보고 체질을 감별한 다음 ‘당신 ○○병이 있군요’라고 말해주면 환자들이 어떻게 아느냐며 신기해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족 소수민족의학인 朝醫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상의학이라고 그러면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朝醫學을 가르쳐준 黃鶴松(작고)이라는 스승에 대해서, 그리고 그 스승이 배웠다는 李珍(북한에서 건너옴. 현재 80여세 전후. 생존여부는 불명)이라는 사람에 대해 주변정황을 듣게 되었다. 다음에 오면 자기스승에게 배울 때 썼던 노트들이 있으니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연길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나는 가목사가는 기차를 탔다. 그날 연길에서 새벽 5시 기차를 타고 저녁 7시40분에 가목사에 도착했으니 14시간이나 기차를 탄 셈이다. 역 출구로 나갔더니 노인회 회장 김호일 씨를 비롯한 그 마을의 간부를 지낸 70대 노인 세분이 과일박스 뜯은 골판지뒷면에 ‘迎接車雄碩博士’라고 써서 기다리고 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어야 하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그분들이 대절해온 작은 봉고를 타고 40여 분 남짓 외곽으로 달렸다. 가목사시에서 40여분 떨어진 곳에 조선족자치구가 있는데 ‘星火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鄕은 6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가게된 곳이 그중의 하나인 燎原村이다. 이 성화향 외에도 주변에는 조선족자치구들이 몇군데 더 있다고 한다.
그날 밤은 마을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겸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숙소로 향하면서 한국에서 박사님이 오신다고 개를 두 마리잡아서 내일 마을의 노인잔치를 하기로 했단다. 마을잔치가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박사님은 미리 대접하겠다면서 내일 아침 6시에 데리러 오겠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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