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채한 교수의 SYMPOSIAC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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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채한 교수의 SYMPOSIAC②
  • 승인 2006.10.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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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산업화를 생각한다(1)

한의학과 산업을 함께 이야기하는 ‘한방 산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치 않은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와 ‘한방산업지원센터’에 발을 들여 놓은 지 6개월이 지나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 불편함은 어찌할 수 없는가 봅니다.

‘한방 산업’이라는 단어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한방’이라는 것이 한의약을 의미한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업’이라는 것이 주는 뭔가 모르는 부정적 의미는 영 한의학과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근세 산업화에 따라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체온을 느낄 수 없는 물건들, 산업화에 따라 발생했던 공해와 질병들, 대량 생산을 위해 희생되었던 인간성 말살이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의학이 지금까지 당해온 박해의 이유가 산업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 예를 들자면 체온을 느낄 수 있는 한의사의 손끝으로 진단을 한다는 것, 산과 들에서 자연(nature)스레 자라나는 약초를 사용하고, 모든 환자들에게 의사가 직접 침을 놓아준다는 것 등 100%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의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자 혹은 본초학의 신농씨를, 반도체 공장이나 자동차 공장에 서있는 것을 본다면 어쩔 수 없이 낯설 것입니다.

■ 한방산업에 한의학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한방 산업’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을까요.
대한민국 정부가 뭐가 돈이 남아돌아서 한의학자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한의학’ 혹은 ‘한의약’과 ‘산업’을 함께 놓고 보는 것일까.
중앙정부는 ‘한방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지상 6층짜리 센터 건물에 연구 장비와 인력을 갖추어주고, 수십억의 돈을 들여서 전국의 생명공학 관련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지방정부에서는 공무원이 나서서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혹시 한의사들만 모르는 무언가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백여년 전 이 땅에서 선교사들의 서양 의약에게 당했듯이 이번에도 보기 좋게 속고 있는 것일까요.
그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한의학계가 이제 조금 기 펼만하니 눈뜬 채로 먹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십여 년 전만 해도 없었던 단어, 50년간의 한의과대학 교육 과정 속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태어나서 처음 들었던 ‘한방 산업’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는, 그 개념적 정의나 혹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아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리어 그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와 황당함을 느끼는 근본을 이해함에 비례해서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첫째로, ‘한방 산업’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호한 총론만 있고 구체적인 각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의약’만 해도 완전한, 아니 심도 있는 이해에는 평생이 걸린다고 합니다. 평생 임상에 헌신하신 선배님들도 뒤돌아서면 모르겠다는 것이 한의학입니다.
그러한 한의학을, 같은 자리에 놓는 것만으로도 의아한 ‘산업’과 연결시킨다고 하는데, 왜 수긍할 만한 각론이 없는 것인지요. 필자처럼 6개월 된 사람은 그저 짧은 경험을 통해서 칼럼이나 쓸 정도가 되겠지만, 이만큼 ‘한방 산업’의 외연이 성장되었다면 한의과대학의 자라나는 후학들을 위해 한의학과 산업에 대한 각론이 충분히 설명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내용없는 단어가 먼저 만들어졌다고 해도, 백보 양보해서 음양오행(陰陽五行), 장상론(臟象論)과 산업(Industry)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컨센서스(consensus)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이제는 한의계가 한방 산업을 제시할 때

둘째로,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각론을 찾아가다 보면 한방 산업 혹은 한방 상품이라는 것이 한의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술이나 차, 건강보조식품 혹은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는 ‘신약’이 한방 산업의 대표주자라고 이야기됩니다.
한의대를 졸업한 99%의 학생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 나아간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한의사, 한의원, 한의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한방 상품, 한방 산업을 연구하는 한의대 교수라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아마도 한방산업이라는 단어를 처음에 만든 사람이 ‘한의학’이라는 새로운 트랜드(trend)가 필요해서 도용했나 봅니다.
한의학이 지니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종합적이라는 것, 인간적이라는 개념이 기존의 제품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하면서 well-being이라는 맛을 주고 싶은 생각에 붙여진 것은 혹시 아닐까 합니다.
소위 한방 산업의 면면을 바라보면 한의학적인 음양오행이나 혹은 장상론, 변증론, 사기오미론, 경락학은 찾기 힘들고, 그저 한약재의 사용이라는 것이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셋째로는 ‘한방산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고 ‘한방’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며 산업계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면서 한의계에 이득이 될 수 있다면, 무언가 자존심을 걸 수 있을만한 주장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잘 나가는 상품들이 스스로 ‘한방제품’이라고 자칭할 때, 자신 있게 노(NO!)라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부화뇌동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들이 해 놓은 일들을 들러리서는 모습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합니다. 남들이 해 놓은 거 공짜로 먹을 생각은 하지도 맙시다. 그건 꼭 체합니다.
자존심도 없이 남들에게 ‘한방’이라는 옷을 거져 입혀주는 건 이제 그만 합시다. 남들의 꽁무니를 따라가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나서서 끌고나가야 뭔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습니다.

각론이 없기는 산업계나 과학기술계 모두 고민하기는 마찬가지일진데, 아는 우리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 끌고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의계의 외연은 이미 그만큼 커져 있고, 한의약은 멋진 블루오션(blue ocean)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한 (대구한의대학교 한의대 교수)
연락처 : www.chaelab.org
약력 : ▲대구한의대 한방산업지원센터 임상시험지원실장(현) ▲미국 클리브랜드 클리닉, 하버드 메디컬 스쿨, 한국한의학연구원 등 근무

※알림 : 이 칼럼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자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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