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의학의 언어」를 버리지 말자 - 최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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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의학의 언어」를 버리지 말자 - 최방섭
  • 승인 2006.09.2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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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방섭(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장)

한의상병 삭제는 한의학을 없애겠다는 것
KCDO의 미진한 부분은 KCD로 보완 바람직

임상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할 사업이 무엇일까. 최근 10여년 사이에 한의학계는 많은 연구와 임상의학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적인 질병관이나 병리체계가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정부는 전통의학의 발전과 육성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의질병체계에 대한 연구 정책은 전무한 편이다. 정부도 한의학계도 한의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하여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한의계 일각에서 한국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KCDO)를 모두 삭제하고 양방식 분류인 한국질병사인분류(KCD) 만을 사용하겠다는 의견들이 있어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한방질병분류의 일방적인 삭제가 아닌 보완이 필요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하며, KCD까지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각국의 전통의학과 그 병리체계에 대하여 중요성을 인정하고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에 전통의학의 질병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소중한 한의학의 언어를 버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항이다.

■ 「한의학의 언어」를 버리는 일

현재 KCD의 분류 기준은 이환 병태의 전 영역을 포함할 수 있는 상호 독립적인 항목으로 ▲전염성 질환 ▲체질적 또는 전신적 질환 ▲부위에 따른 국소질환 ▲발육 질환 및 손상성질환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 이에 따른 분류체계 및 구조는 다시 대·중·소·세분류의 4단계 분류체계로 구성된다. 이렇게 해서 대분류 21개, 중분류 261개, 소분류 2,036개, 세분류 12,171개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 기타분류로 신생물의 형태학적 분류를 추가로 두고 있다.
이에 반하여 한의학의 분류체계인 KCDO는 감염성 질환과 상해외인 질환에 대한 분류체계가 미흡하고 매우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체질적 또는 전신성 질환 및 부위에 따른 국소질환은 한의학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고 또 KCD보다 더 합리적이고 표현이 잘된 질환도 있다.

■ KCDO 개편의 필요성

① 질병분류의 전 단계인 병태에 대한 명명과 명명된 병태에 대한 정의와 범위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② 질병분류의 많은 항목이 중복된 사인분류로 이중코드를 갖고 있다. 이는 임상 각 과에 의한 분류로 임상 과별 질병명의 배열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복된 사인분류는 양방과의 대응 상병 분류도 각기 다른 체계의 분류를 갖고 있다. (특히, 법정 전염병의 경우 이중코드를 갖고 있어 관리의 개선이 시급함.)
③ 장부별 사인과 증후별 사인이 중복 혼재하여 진단 및 사인분류에 혼란을 초래한다. 이는 하위분류로 분류되는 항목이 해당 상위 상병의 증상이 분류되어 있어 어떠한 계통의 질환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
④ 양방사인분류와 대응하는 경우 분류계통의 체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⑤ 사인의 성별 구분이 명확해야 하는 질병의 경우 성별 구분이 필요하다.
⑥ 해부학적인 분류에 의한 상병은 한의학만의 해부 생리학적인 구조에 의한 분류로 독립하고 그 이외의 해부학적인 질병은 KCD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⑦ 법정 전염병을 포함한 구체적인 감염원인성 질환의 별도 항목 분류가 필요하다.
⑧ 상해외인에 의한 상병 분류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⑨ KCD의 코드 분류체계와 상이한 한의분류체계에 대한 별도 지침이 필요하며 상기한 분류체계도 재정비하여 한의분류체계의 코드로 분류되어야 한다. 한의분류가 국가분류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이상으로 현행 KCDO의 많은 문제들은 다 파악이 되어 있고 그 개선을 위하여 KCDO 개선위원회를 두고 있다. 질병분류는 임상의학의 국가적인 역학관리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한의학계는 그간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 사업에 너무도 소홀히 해왔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수많은 한의학회의 분과학회들과 대학, 그리고 임상한의사들 모두 질병분류체계의 완성을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한다.

■ 질병분류체계 완성 위한 제언

끝으로 요약 정리하면 질병분류체계를 설정하는 대원칙의 기준은 국제질병사인분류(ICD)의 분류원칙과 사인분류를 전면 수용하고, 한의학의 고유한 분류체계와 병렬 분류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의학계의 모든 분과학회별로 충분한 선행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질병 분류에서 한의학의 병태에 의한 분류가 모든 국가통계자료에서 반드시 남아 있는 분류가 되어야 한다. 질병명 명명규정과 분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한글로 풀어 정리되어야 한다. 질병분류는 한의사만을 위한 분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학 관리 뿐 아니라 보건의료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막연히 한의상병을 모조리 삭제하겠다는 어리석음은 한국의 한의학을 송두리째 없애겠다는 것이다.

■ KCDO 개정과 발전에 매진해야

이제 세계의 의료질서는 종합적 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자연치료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있고, 각 나라의 전통 질병명이나 치료가 현대의학보다 우수함이 증명되고 있다.
서두에서 밝힌 대로 WHO에서는 각 나라의 질병통계를 인정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우수성을 입증해 줄 KCDO를 포기한다면 한의학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KCDO에서 부족한 손상성질환 및 악성신생물 등 우리의 분류체계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의 것을 송두리째 버린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의학의 근본인 질병명을 버리고 양의학적 사고로 만들어진 질병명을 사용한다면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시민이 되어서 영화를 누리려한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대한한의사협회(보험위원회)는 KCDO를 포기하고 전격적으로 도입하기로 의결한 KCD사용을 철회하고 KCDO의 개정과 발전에 매진할 것을 촉구한다.

※ 편집자주 : 이 기획은 당초 ‘찬반논쟁’으로 준비하였으나 찬성쪽 의견을 써주기로 한 대한한의사협회 측에서 갑자기 기고를 기피함에 따라 반대측 의견만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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