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한의학의 미래, 한의대 교육의 지향점은 어디인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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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한의학의 미래, 한의대 교육의 지향점은 어디인가(中)
  • 승인 2006.09.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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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성장통, 학문 논쟁에 불을 붙여라
옥석 가리는 살 깎기 과정 필요

예·본과 6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이들이 임상에 뛰어들어 고민하게 되는 것은 “그토록 많이 배운 내용을 임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이다.
몇해 전 졸업한 한 공보의는 “한의대 교육은 한의학적으로 환자를 치료해 내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학부과정 이후 대부분 병원 수련의를 밟는 의학 교육 시스템과 한의대의 사정이 다르다. 대학에서는 이런 현실도 감안해 한방 임상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문제는 교육내용이 체계화되지 못하고, 연계성이 없어 각 과목 지식이 따로 논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젊은 한의사는 “재학시절부터 줄곧 선배들에게 ‘한의학적 觀을 세워라’라는 충고를 듣고 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다양한 학설과 이론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 교육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연결해 ‘한의학 관’을 세워야 한다는 명확한 해법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다”면서 “도대체 ‘한의학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 춘추전국 시대 정국, 무기력한 대학

현재 한의대에서는 한의학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집적된 방대한 이론이 교육되고 있다. 더불어 현대화된 중의학 교재, 양방의 지식이 혼재하고, 시간과 함께 새로운 이론과 지식들로 교육의 대상은 불어나고 있다.
한의학 교육 관계자들은 “학문적 우열을 가리는 논쟁 없는 풍토, 이로 인한 학문적 체증”이 심각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한의학의 이론이 체계를 갖기 위해 기존 학파들 간의 치열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고자 하면 가리키는 방향이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지도를 하나의 통합된 지도로 그려나가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것.
반면 이 과정을 학문의 표준화라고 이해한다고 볼 때,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의학은 실질적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응용학문이고, 다양한 지식 중 치료효과가 높은 이론은 발전시키고, 아닌 것은 폐기하는 자정능력이 요구된다.

학문 정체는 비단 한의대 교육 뿐 아니라, 한의계 전체에 악순환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서도 심각시되고 있다. 학문·임상을 평가하는 노력과 기준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검증·인정받지 않은 학문과 이론을 자체적으로 구별할 근거가 없다. 달리 생각하면 유력한 이론이 나타난다고 해도 대학 뿐 아니라 한의계는 이를 공식적으로 흡수할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런 난국을 대학 역시 고스란히 껴안고 있고, 기존의 육중한 이론을 체계화하지 못한 채, 기초간·임상간·기초와 임상간의 밀착된 교육과 멀어지고, 새로운 이론을 흡수하는 적응력도 떨어지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 학문의 정체를 풀어야

권영규 대구한의대 한의대 교수는 “교육의 문제는 교육내용과 이를 구성해나가는 절차상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임상을 검증하는 학술적인 검토, 즉 논문으로 말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예를 들어 새로운 침법이 나왔을 때, 그 이론이 기존의 침법을 뛰어넘는지 학술적인 논문을 통해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학문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책임은 특히 임상교수들에게 크다”고 지적했다.

김기왕 상지대 한의대 교수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대학의 노력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은 기본적인 임상 가이드라인, 표준을 제시해야 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이 모두 최고일 수 없다. 교수들이 만나서 최선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판단·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임상연구가 임상효과를 검증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미 축척된 연구를 활용하고 가능한데로 논의를 모아가다 보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대학 자체의 학문 정화 노력 부재는 한의계를 뿌리서부터 흔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의학의 위상은 계속 추락할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외부의 힘에 의해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교육내용, 다자간의 열린 논의 필요

학문간의 연계성을 찾아가는 주체는 학문적으로 이를 연구하는 교수, 대학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들 개인이나 교실에만 맡겨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과거 한의대 학습목표 사업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이견을 좁히는 것은 수월한 문제가 아니다.
보다 큰 차원에서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내용을 평가하여 결정하는 것은 대학교수 뿐 아니라 임상의, 교육연구자 등 다자간의 논의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충열 경원대 한의대 교수는 “지금 시점에 한의대 교육 계획에 필요한 것은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의대의 목표와 세부 전략들에 대한 논의를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라고 지적했다.

교육과정 논의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실질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권영규 교수는 개원의들이 주도하는 미국의 의학교육평가원 운영방식을 예시하여 한의학교육평가원의 역할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개원의들은 최근에 배출된 의사들의 문제점을 통해 그 원인이 되는 각 대학의 제반현상들에 대해 평가하고 대학 측에 변화를 요구한다. 요구안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정부에 건의해 안을 관철시키고 있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시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능숙한 의사가 교육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스템은 결국 교육내용이 소비자를 위해 맞춰가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대학과 개원가의 벽을 넘어 하나의 논의 구조속에 넣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아울러 한의학교육을 전담하여 연구하는 한의학교육학 과목 및 교실 설립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계속>

민족의학신문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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