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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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의 젊은 힘, 지역보건의 참 일꾼(4)
  • 승인 2006.08.1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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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보건사업에 대한 한의계의 관심과 도움 절실

4. 한방보건사업담당 한의과 공중보건의사의 넋두리

■ 아직은 생소한 HUB보건소 시범사업

선배들과의 대화.
“너 어디 있냐?”
“보건소요.”
“거기서 환자 많이 보니?”
“아뇨. 많이 오지는 않아요. 실은 진료는 다른 선생님이 봐요.”
“그럼 너는 뭐해?”
“사업 담당이예요.”
“사업? 그게 뭐냐?”

이때쯤 되면, ‘뭐 그런 게 있어요’ 하면서 대충 얼버무릴지, ‘한방건강증진사업 거점(HUB) 보건소 시범사업이라고 있는데 말이죠.’ 하면서 사연 많은 장황한 설명을 덧붙일까 말까 고민한다.
그래도 사정을, 설명을 듣게 되면 대개는 ‘그래 고생한다’, 격려해주는 편이지만,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환자도 안 보는데 뭐가 그리 바쁘냐?’ 하는 반응도 있다. 하긴 같은 지역 공보의들도 내가 무슨 업무를 보는지 알지 못하는 데 말이다.

많진 않지만 보건소에 근무하는 공보의 중에서는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내원하는 환자를 보기도 하지만, 나처럼 안 보기도 한다. 대신 지역보건사업이나 한방건강증진 사업을 수행한다. 이른바 8대사업이라고 하는데, 전국에서 선정된 30여개 HUB보건소에서 3년간 시행된다.

거동 못하시는 분들 방문진료를 나간다거나, 금연·중풍예방·산전·산후관리·육아·사상의학·기체조 등의 분야에 대해 주민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기체조교실의 경우 한의사로서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면지역 마을회관에서 기체조 전문강사를 초빙하여 주 2회씩 가르치게 하고, 체조시행 전후의 건강상태를 비교 분석하는 등의 일을 한다.

이런 것 말고도 나의 경우, 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척추측만증을 비롯한 자세이상과 그로 인한 연관증상을 분석하고, 기체조 운동으로 바로잡는 사업도 한다.
그런 일 하는 게 나뿐이랴. 비만·성장·골다공증·관절염·양생 등의 사업이 지역마다 진행되고 있다. 이 모두가 공보의들이 머리를 짜내어 기획한 사업들이다. 거점 사업 1년 후, 평가 대회에서 각 지역에서 이 많은 사업들을 그럭저럭 추진해냈다는 것에 복지부 관계자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지방 공무원들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 의욕적인 젊은 한의과 공보의들의 덕이다.

■ 고군분투, 각자의 지역에서 삽을 들고서

1년에 3, 4차례 HUB보건소를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공보의들이 서로 모이는 기회가 된다. 저녁 늦게까지 교육, 토론을 마치면 공보의들끼리 따로 모여서 술 한잔 하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업담당이 된 경우도 있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보건소에 들어온 이들도 있지만, 다들 일이 생각만큼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공무원들과 마찰이 생기고, 제대로 된 행정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다. 공무원 조직 특성상 창의적이지도 않고, 게으르고, 무능한데다 때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무리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 가끔씩은 공보의로서의 정체성과 보건사업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아예 직원이 적은 지소 근무를 자원해 충돌의 소재를 없애버리고 싶어진다.

힘이 빠지는 건 그 뿐만이 아니다. 한의계에 도움의 손길을 뻗을 곳이 없다는 것. 전문가가 아닌 나는 여러 곳에서 자문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의계 어딜 가서 누굴 만나야 할지 알 수 없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하여도 그것을 보건사업으로서 고민한 한의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 비한의계에 자문을 구하거나 사업을 의뢰하는 예들도 생긴다.

한번은 사업 기획과 결과 보고서 작성을 의뢰하기 위해 은사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예방의학교실에서 대학원생 한명으로 하여금 한방보건사업 전반을 관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네가 대학원 들어와서 연구하면 안 되겠니?”
그저 아이디어를 주거나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는 정도일 뿐, 그것을 머리 싸매고 구체화하는 일은 고스란히 공보의의 몫이 되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렇다. 모든 예방사업의 기본이 되는 음식, 식이(食餌)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한의계에서 공식화된 바는 없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어떻게든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하는 이 역설(!) 그렇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교육을 할 때면, 이해하기 쉬운 웰빙지식 틀거리에 한의학을 낮은 수준으로 버무리고 만다. 각 지역 공보의의 개성에 따라, 지식수준에 따라 강의 내용은 천차만별이 된다. 사업 전후 평가도 양방의 장비를 이용하여 이를 테면, 혈압을 측정하거나 골밀도나 체지방을 측정할 뿐이다. 사업을 추진하다 ‘이게 뭐 한의학이야?’ 라는 의문이 들면, 이게 또 힘 빠지는 거다.

■ 한의학계에 대한 기대와 부탁 : 한방보건사업에 대한 작은 관심을 기대하며

누군가는 ‘뭐가 문제라는 거야? 사업매뉴얼 다 나와 있는데’ 라고 할지 모른다. 문제는 사업의 질이다. ‘얼마나 더 한의학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가’, ‘얼마나 더 예방의학적 기능에 부합하는가’ 고민하며 더 좋은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임상가에서는 무관심할지 몰라도,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은 이를 한의계에 주어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도 지적된 것이지만, 그동안 외면당했던 한의학이 공적영역에서 무언가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고무적이다. 우리 공보의들이 일선에서 열심히 그 지평을 넓혀왔다. 하지만 아직 배고프다. 왜? 뭘 먹은 것 같지 않으니까! 속없는 만두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한의계가 해야 할 일이다.

양방의 건강증진사업에는 분야별로 지원해주는 센터들이 있다. 그곳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진에 의해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각종 관련 연구자료와 홍보물,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고 교육한다. 한의계도 그런 조직이 있었으면, 그런 조직을 채워줄 전문가 집단이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만약 임상에서 거둔 성과를 보건사업으로 실현해보겠다고 몸소 뛰어드시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달려가 꾸뻑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겠다.

현승은(한의과 공중보건의사)

필자약력 : ▲원광대 한의대 졸(04) ▲전북 남원시 보건소 근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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