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땅은 한의학의 생명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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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땅은 한의학의 생명이다(1)
  • 승인 2006.07.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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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한 우리 땅의 몸부림, 한의사도 관심가져야
당귀에 심은 희망과 절망의 평창 현장에 가다

한의학과 땅은 떨어질 수도, 떼어낼 수도 없는 사이이다. 한의사는 땅이 만들어 낸 생명을 환자들에게 전하는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한의사와 땅은 멀어졌고, 상품으로서의 약만이 남아 있는 상태가 됐다. 창간 17주년을 맞이해 땅이 한의계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편집자 주>

■ 장마에 쓸려 내려간 당귀

며칠째 쏟아 부은 장마는 우리나라 약초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키고 있던 농부들에게 또 다시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강원도 평창에서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농법으로 당귀를 재배하고 있는 김태래(38·진부면) 씨는 “다 없어졌어요.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라고 말했다. 산에 심어 놓은 당귀의 상태를 묻자 “다 없어졌는데 제것만 남아있을 리가 있겠어요. 당귀를 제일 많이 심은 용중이 형 밭을 비롯해 전부 없어졌어요. 복구하는데만 2년 이상 걸릴 겁니다”라며 암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땅을 복구하고 농사를 시작해 당귀를 수확하려면 수학적 계산으로만 4년이 필요한 셈이다. GAP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인공비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퇴비를 줘야 한다. 퇴비는 인공비료보다 식물의 생육이 늦어 지력을 회복해 그런대로 상품성이 있는 당귀를 만들어 내려면 족히 5~6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계산이다.
땅이 다시 복구된다고 해도 이들이 계속 GAP 농법으로 당귀를 재배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 약재농사가 남긴 건 빚뿐

지난 6월 중순 GAP 약용작물 재배현장을 보기 위해 찾은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함승주(50·진부면·한국생약협회 평창군지부장) 씨는 약재가 자라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털어놨다.
첫째는 “이번에는 조금 나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다. 약재 농사를 지으면서 남은 것은 수억원 대의 빚뿐이지만 손을 놓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를 그만두려고 해도 빚을 갚을 수 없어 다시 빚을 내 이자 갚기를 되풀이하다 보니 빚은 눈 덩이처럼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가닥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산 위에 심어 놓은 당귀다. GAP 농법으로 재배했기 때문에 지금은 아니더라도 얼마 있지 않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 GAP 약재에 희망을 걸고

처음 진부에서 9개 농가가 GAP 당귀재배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5개 농가만 남아있지만 이들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있어보였다.
GAP 규정에 따라 농사를 지으면 병충해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병충해에 강한 당귀를 심으면 추대가 올라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쳐 병충해 피해를 극복해 냈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대로 농사를 지으면 생산비는 15% 올라가고, 생산량은 거꾸로 15%가 줄어든다. 일반 당귀보다 30% 비싼데다가 모양도 안 좋아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우선 알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윤을 붙이지 않고 시중 가격과 차이가 나지 않도록 했다. 생산기술도 발전시켜 모양도 어느 정도는 좋아보이도록 만들었다.

산지매집상이 요구하는 ‘가격’에 맞춰 약재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진짜’ 약재로 기른 당귀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당귀는 평당 한근 반이 생산되고 원가는 약 3400원 수준이다. 매집상이 이 가격을 맞춰주지 않으면 한 평에서 두 근을 생산하는 수밖에 없고, 수확기 직전에 비료를 많이 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땅이 망가지든 말든, 당귀의 향이 어떻고 약효가 어떨지는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
약재의 가격과 모양만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의사의 책임일지 모른다.

■ 약재가 살아 숨 쉬는 터전을

유기농이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GAP 농법도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다섯 농가는 지난해 한국인삼공사와 당귀 6만3천근을 계약 재배했고, 장마로 무산됐지만 올해도 5만5천근을 납품할 계획이었다. 남은 당귀 중 생약협회가 필요로 하는 양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새롬제약이 모두 가져가 한의계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GAP 농법으로 당귀를 재배하고 있던 곳은 이번 물난리로 모두 떠내려갔다. 그러나 땅은 이들 농부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약초가 될지는 모르지만.

농산물 개방이 눈앞에 와 있는 지금 약초의 GAP 재배는 땅을 놓지 않으려는 농부들의 마지막 몸부림일지 모른다. 땅과 떨어질 수 없는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 농부들이 약초와 함께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약은 찾지 않으면 녹아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산야에 그 많던 약초들이 사라졌듯 농부의 손에 의해 자라나는 약초 역시 찾는 이가 없으면 사라질 것이다. 아니 농부가 놓아버릴 것이다.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얻어진 약초 재배의 노하우도 함께 사라진다. 한의사에게서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최대의 약재 생산지인 중국의 농민은 우리와 얼마나 다를지 생각해 보자. <계속>

강원 평창 = 민족의학신문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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