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④ - 정책기획전문가의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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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④ - 정책기획전문가의 배치
  • 승인 2006.02.0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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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 있는 기획, 평가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

■ 기획이란?

앤드류 그린은 그의 저서 ‘보건의료기획의 입문’에서 기획을 ‘현재와 미래에 가용가능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적절하게 사용하여 미래의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짧은 정의 속에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목표), 무엇을 가지고(자원), 어떻게(효율적이며 적절한 시행으로), 언제(미래), 과정에 대한 형식화의 정도(명확성, 체계적인 방법)가 포함돼 있다. 이런 정의로 볼 때 기획이란 ‘한정된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자원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해야 할 과제를 마구잡이식으로 늘어놓은 것을 기획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리적 기획은 대체로 ▲무슨 상황인가 ▲어디로 가는 것을 원하는가 ▲행동을 위해 가능한 선택방법은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최선인가 ▲행동을 취하라 ▲그리고 행동을 취한 뒤 피드백과정 등 6단계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다시 단순화시키면 상황분석(1) - 우선순위 결정 - 대안평가 - 예산을 갖춘 일련의 설계 - 실행과 모니터링 - 평가 - 상황분석(2)이라는 기획순환곡선이 된다.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기획은 자신이 처한 상황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이후의 작업이 순조롭게 된다. 이것을 한의계에 적용하면 한의학정책을 기획할 때 한의약의 상황을 철저하게 점검하는 일이 1차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의학의 장점과 단점, 한의약을 둘러싼 시장동향, 한의약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그 기대 속에 숨어 있는 위기요인, 전통의학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국내적 경쟁력 분석은 상황파악에 절대적이다. 또한 인구학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 사회심리학적 요인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요즘같이 인구가 고령화하고 저출산이 가속화되는 사회상황은 한의약에 대한 수요요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만성, 퇴행성 질환에 대한 저가의 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고급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심지어 평균수명의 증가, 가족의 해체, 개인적 욕구의 중시 등의 사회적 트렌드는 한의약의 수요예측과 동시에 위기요인과 기회요인 파악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전략적 방향설정과 직결된다.

■ 한의학 예측과제 실현율 30%

한 조직은 상황분석을 바탕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해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한의계의 경우 단체마다 추진과제가 달라 정책과제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1996년부터 한의학 분야 예측 연구를 해오고 있어 좋은 참고가 된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대한한의학회 분과학회를 중심으로 17명의 한의대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전문도, 중요도, 실현시기, 연구개발 수준, 연구개발의 추진방법, 실현상의 저해요인 등 6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 1차 1943개의 예측 과제를 도출하고, 2차로 83개의 예측 과제를 확정했다.

이 가운데는 한의약법, 의료기사지도권, 보험약제의 급여범위 확대, 국립대한의대 설치, 한약재의 규격화, 전문의제도, 용어표준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과제를 대상으로 10년 후인 2005년에 한의학연구과제의 실현정도를 측정한 결과 적중률이 30%였다.
이는 한의계가 추진한 정책과제가 30%가 실현되고, 나머지 70%는 미실현되거나 일부 실현됐음을 의미한다.

■ 평가기준의 개발 필요

미래예측과제의 적중률 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됐다는 점에서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평가되지만 평가기준이 뚜렷하게 객관화되지 않은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가령 조사자로 참여한 17명의 한의대 교수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적정했는지, 실현의 의미인 ‘정리된다’, ‘실용화된다’. ‘완료된다’, ‘마련된다’ 등 용어상의 정의가 연구시작 단계부터 정리되지 않았다거나 1건의 실현을 실현됐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일부 실현됐다고 해야 할지 모호한 것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또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실현과 미실현이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아울러 정책과 R&D 과제가 뒤섞여 적중률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정책과제와 R&D과제를 분리해서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 지표와 데이터 확보가 생명

이상과 같이 한 조직이 조직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기획을 할 때 기획의 단계에 따라 점검해야 할 요소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추진목표를 정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또 실행과정에서 꾸준한 모니터링도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하나가 빠지거나 제대로 점검되지 않으면 목표달성이 어렵거나 아니면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에 밀려 허겁지겁 시행했다가 본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가 지표와 데이터다. 평가지표가 객관적이지 못하면 힘들게 정책을 수행하고 나서도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판단할 길이 없다. 또 정확한 데이터 없이 투입요소를 결정하게 되면 산출이 부정확하게 나와 이후 기획에 반영하기 어렵게 된다.

■ 정책기획전문가 배치 시급

한의계 각 단체는 정책기획국, 정책이사 등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부서나 책임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 부서와 책임자가 다루는 일이 정책을 기획하는 일인지, 아니면 이미 입안된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인지 불분명할 때가 많다. 복잡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비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획된 정책의 이념을 전파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실행의 결과를 새로운 기획에 반영해야 할 조직의 대표와 그를 보좌하는 기획담당자가 얼마만큼 안목을 갖췄는지도 미지수이다.

이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선거공약의 충실성과 퇴임 후 공약의 이행 등 실적평가지표를 마련해 회장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정책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2~3년 단위로 임무가 끝나는 집행부보다 장기근무하는 전문가가 기획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정책기획전문가는 조직 내적으로는 정책기획의 이론과 실무 양측에서 체계를 잡고, 조직 외적으로는 네트워크의 주체가 돼서 정책의 내실을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의대내 보건학교실과 한의협내 정책연구소를 설치한다면 한의학 정책전문인력의 저변이 탄탄해질 수 있다.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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