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한의원 ‘한약’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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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의원 ‘한약’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 승인 2005.09.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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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약수요 급락, 보험약·제제는 수준 미달
건보급여 확대·제약절차 간소화 절실

한방의료에서 약의 비중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첩약의 비중이 줄고 있으면 이를 대체할 다른 형태의 약물이 늘어야 마땅한데 비슷한 기미마저 없다. 아니 한의계에는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한의사는 “첩약 환자 수가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이제는 며칠 동안 한 제도 처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침을 놓고 부항을 뜨고 환자의 아픈 곳을 지압해주는 게 대부분이어서 한의사의 직능에 대해 혼란까지 생기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환자가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첩약을 처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험약이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제약사에서 만든 한약제제를 투약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이 한의사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첩약 환자가 줄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이 피부로 느끼고 있고, 한방건강보험급여에서 약재비가 차지하고 비율을 보면 한방의료기관에서 ‘약’이 처한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3년 기준으로 한방건강보험 급여는 8,887억원으로 전체급여의 4.3%를 차지했다.
이중 보험약 비율은 4.06%에 불과했다. 94년 처음 한방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을 때 27.8%에 달하던 약의 비중이 매년 줄어 2004년에는 4%대 이하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방의료기관에서 보험약 투약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보험약 투약이 저조한 이유는 약효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본인부담금 기준금액 때문에 약을 투여할 경우 환자에게 비용을 더 받아야 하므로 투약하지 않는 한의사가 많은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금천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한의사는 “본인부담금 1,500원을 내고 진료를 받는 노인 환자에게 보험약을 투약하고 돈을 더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진료 중 굳이 한 가지를 빼라면 보험약을 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한의사가 임상에서 평상시에 응용하고 있는 대로 ‘가감’이 돼 있고, 부형제로 인한 소화 장해가 없으며 약효를 확신할 수 있는 한약제제가 건강보험급여에 포함돼 있을 때 환자 진료에서 보험약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환자 회복에 확실한 차이를 보일 것을 자신하면 보험약 투약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한방건강보험 급여가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그마한 시장으로 인해 제약사는 약 개발에 뒷짐을 질 수밖에 없고, 한의사는 한의사대로 투약을 꺼리는 것이 맞물려 한방 보험약을 계속 뒷걸음질 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약만이 문제는 아니다.

최근 들어 한방의료기관을 겨냥해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제약사도 생겨났으나 일반의약품으로 나와 있는 이들 한약제제는 한의사가 원하는 처방과는 거리가 있어 줄어들고 있는 첩약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한약제제는 거의 11개 기성한약서에 나와 있는 원방 그대로를 제제로 만든 것이다.

양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약효가 알려져 있으니 환자의 상태를 보고 선택해 투약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일본의 한방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한의학 실정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즉, 하나의 기성 처방이라도 환자진료를 통해 응용해 투약하고 있지 원방 그대로를 투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은 기성처방만을 제제화하기 쉽게 만들어 놓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 한의학의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의 한약제제는 한의사가 원하는 것은 드물고, 약국에서 진단 없이 일반인에게 판매되고 있고 일부는 임의조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 기성 한약제제가 건강보험 급여대상에 포함돼 있을 경우 응용도를 높여 볼 수도 있으나 현 상황에서는 환자의 부담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아 투약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결국 첩약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및 기호변화와 기대에 못 미치는 보험약, 그리고 한의사의 기준에 맞지 않는 한약제제가 한의원에서 ‘한약’이 줄어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약제제의 한의원 활용 중요성을 강조해 온 신광호 외치제형학회장은 “한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한약제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시장성도 높으나 제도적 장벽으로 접근하기 어렵고, 한의계만을 바라보고 제약사들이 개발을 시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기성 처방을 가감해 한약제제로 만드는 길 조차 제약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사실상 막혀있는 상황이어서 한의원에서 한약의 비중이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방의료기관에서의 ‘약’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보험약의 제형 변화 등을 통한 품질 향상 ▲제약회사에서 출시된 한약제제의 한방건강보험 급여화 ▲기성 한약서 처방을 가감한 제제에 대한 허가절차 간소화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한방의료기관의 한약제제가 활성화됐을 때 한방신약 개발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한방의료기관 역시 첩약의 수요가 떨어졌다고 한약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환·산·고제 등 다양한 형태의 한약을 상비해 놓고, 환자들에게 적극 투약해 한약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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