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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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
  • 승인 2005.07.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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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한의대 원전학교실, 의사학교실, 진단학교실에서 중국의 의학유적과 역사유적을 탐방하는 것이 금년(2004년, 이하 같음)으로 5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금년에는 일찌감치 서안주위와 실크로드를 거쳐 돈황을 탐방하기로 목표를 정했고, 마침 천진중의학원의 교수로 있다가 휴직을 하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金 軍 선생이 교실에서 함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섬서성과 감숙성의 관광지에 대한 자료들을 미리미리 준비할 수가 있었다.

이번 탐방단 참가자는 필자와 필자의 처(신은숙), 김용진 교수와 아들, 동신대 한의대 이남구 학장, 김정규(대전대 진단학 교실 겸임교수·대전 광림한의원)원장, 백선영 씨 부부, 윤한용(경기 남양주시 한얼한의원)원장, 최종필(서울 성북구 보림한의원)원장, 강충모(서울 강남구 삼인당한의원)원장과 두 딸, 장용훈(충남 천안 대성한의원)원장과 딸, 정윤철(대전 정윤철한의원)원장, 왕학감(대구 북구 인화당한의원)원장, 최형록(서울 구로구 동의한의원)원장, 천안의 이 균 원장 그리고 3차, 4차에 이어 4가족이 모두 참여한 왕소영(경기 부천 왕소영 한의원)·필서진 부부 가족 등 모두 23명이었다.

이번 여정은 7월 12일 출발하여, 서안(西安)의 북쪽에 있는 황릉현(黃陵縣)의 황제릉(黃帝陵), 요현(耀縣)의 손사막 유적이 있는 약왕산(藥王山), 보계시(보鷄市)의 신농씨(神農氏) 유적지를 거쳐 감숙성으로 들어가 복희씨(伏羲氏)의 고향인 천수시(天水市), 감숙성의 성도(省都)인 난주시(蘭州市), 만리장성이 끝나는 가욕관시(嘉욕關市), 돈황(敦煌)을 돌아보고 다시 서안으로 돌아와 서안과 주위를 관광하고 7월 19일 귀국하는 7박 8일의 일정이었지만 밤 10시에 인천을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실제로 탐방하는 날은 6일에 불과했다.

우리 일행은 12일(월) 밤10시 중국 민항 동방항공 MU284편을 타고 서안을 향해 출발했다. 3시간 정도를 비행해 서안의 북쪽 함양(咸陽)시에 있는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서 우리들의 들떠 있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필자에게는 서안이 3번째로 92년도에 한의대 교수들과 한번 다녀간 적이 있었고 98년에 우리 가족 다섯 식구가 근 보름을 머물면서 서안 주위를 샅샅이 돌아본 이후 6년만의 방문이었다.

우리들을 안내하는 가이드 이성철 씨는 서안에 온지 8년이 되었고, 가이드 생활은 4년째라고 했다. 공항과 우리가 투숙할 서안빈관은 거리가 멀어 5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처음 대면한 우리들에게 중국, 섬서성, 그리고 서안에 대한 소개를 해 주었다.

□ 섬서성과 서안에 대한 소개 □

섬서성(陝西省)은 옛날 섬원(陝原, 지금의 하남성 섬현)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주나라 초기부터 섬서라고 불리워졌다고 하며 총면적은 20만㎢에 인구는 3천 5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섬서성의 지형은 섬북고원(陝北高原), 관중평원(關中平原), 섬남산지(陝南山地)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중 황토고원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한다. 관중평원과 섬남산지를 가로지르는 산맥이 진령(秦嶺)산맥인데 이 진령산맥은 남북의 기운을 나누고 있으며 이곳에는 중국의 핵무기 공장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원래 중국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동북지역에 중공업이 발달했었는데 70년대에 러시아와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서안으로 중공업기지가 이전되어 왔다고 한다. 진령산맥의 3,500m 이상 되는 곳에서는 제 4빙하기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곳은 외국인들의 출입금지구역이라 한다.

북쪽의 황토고원은 서쪽에서 300만년 전부터 황토가 날아와서 생긴 땅으로 황토층의 깊이는 155m까지 이른다고 한다. 이 황토층은 농사가 잘돼 금년에 젓가락을 꽂아놓으면 내년에는 숲을 이룬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한다.

서안은 중국의 6대 古都(옛 수도; 북경, 서안, 낙양, 개봉, 남경, 항주)의 큰 형님으로 13개의 왕조가 도읍 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山水는 별로 수려하지 않고 문화재만 남아있어 관광산업은 서안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심천을 가고, 100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해를 가고, 1000년의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가고, 3000년의 역사를 보려면 서안을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서안(西安)이라는 말은 명나라 때에 서부안정(西部安定)의 뜻을 취해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전은 장안(長安)이라고 불렀는데 장구안정(長久安定)의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비록 13개의 왕조가 도읍을 했지만 위치는 조금씩 달라 주(周)나라 때는 호경(鎬京, 서안시 서쪽)에 도읍했고 진(秦)나라 때는 함양(咸陽)에 도읍했고 수나라, 당나라 때 비로소 장안에 도읍을 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번성했던 도시라고 한다.

서안은 지금의 중국 지도에서 중심에 위치하며 바다를 보려면 강소성의 연운항(連云港)시까지 기차로 13시간을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또 서안은 중국의 4대 화로중의 하나라고 한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가 구이가 되어 떨어진다는 중경, 무한, 남경의 3대 가마솥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4대 화로중의 하나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리고 금년이 그 중에서도 가장 무덥다고 한다. 이전에 44℃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40℃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출근을 안해도 월급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서안은 1년에 평균 450~550mm 정도 비가 내리지만 지역적인 편차가 커서 동쪽으로 가면 1800mm가 내리지만 서쪽에는 5mm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물이 몹시 귀해 평생 동안 태어났을 때, 결혼할 때, 죽었을 때, 3번만 목욕을 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고 한다. 농사는 거의 전부가 밀농사로 주식은 밀가루이고 1년 동안 쌀을 못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곳 서안 주위는 황하문명의 뿌리가 되는 곳이지만 지금의 경제는 많이 낙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부터 “800리 진천(秦川)”이란 말이 있듯이 800리에 걸쳐 곡창지대가 펼쳐져 먹고 사는데 대한 근심은 없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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