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의학은 과연 정체된 학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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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의학은 과연 정체된 학문인가?
  • 승인 2005.03.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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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의학 끊임없이 발전, 정체 주장은 ‘무지’의 고백
한국의사가 서양의사보다 더 서구편향적
‘근대’, ‘과학’ 접근법으로 한의학 해석은 불완전


최근 CT 판결과 감기 문제로 촉발된 한·양방간의 갈등은 한의학의 비과학성 논란과 의료일원화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양의계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반박할 필요성을 느껴오던 차에 이충열 교수의 기고문은 이런 논란을 잠재울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코헨(Paul A Cohen)이라는 미국의 중국사학자는 1984년 《중국역사의 발견( Discovering History in China)》(국내 출간 : “학문의 제국주의”, 이남희 역, 산해 刊, 2003. 07)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담론에서 통찰력을 얻어 쓰여진 것으로 당시 중국사 연구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미국학자들이 그 동안 중국사 연구에서 보였던 관점들을 충격-반응 패러다임(impact-response approach), 근대화 패러다임(modernization approach), 제국주의 패러다임(imperialism approach)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접근이 모두 서구 중심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중 근대화 패러다임은 중국사회의 발전과정을 전통(tradition)과 근대(modern)로 이분하고 이런 각도에서 중국사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근대’는 당연히 서구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지배해온 패러다임을 말한다.
흔히 ‘근대’의 중심사상은 합리주의, 실증주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으로 특징짓는다. 서양의 중국사 연구자들은 이런 서양의 근대 개념을 통해 중국사를 인식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 역사에 접근한다면 중국사에 있어 근대적 단계는 당연히 중국이 근대서양과 만나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이후의 시기를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의 근대와 접촉하기 전의 전통시대 중국은 정체되어 있었고 잠들어 있었으며 변화가 없었던 시대로 묘사된다.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왜 중국에서는 독자적으로 근대과학이 성립되지 않았는가?”로 표현되는 이른바 니덤의 수수께끼(Nee dham's puzzle)도 이런 근대화 패러다임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코헨에 따르면 근대화 패러다임의 문제점은 전통-근대를 상호 배타적이고 양립불가능한 체계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무비판적으로 서구를 전통시대의 낙후되고 정체된 나라들을 구원한 구세주로 간주하고, 또한 근대를 향해 서양이 걸어갔던 그 과정만을 의미 있는 역사적 변화로 생각하여 이 기준으로 비서구 국가의 역사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얼마전 방영된 SBS 시사진단 프로그램에서 어떤 양의사가 한의학은 지난 400년 동안 전혀 발전되지 않은 정체된 학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 의사는 코헨이 비판한 전통-근대 패러다임에 빠져 한의학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전통은 한의학이고 근대는 서양의학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서양의학이 이 나라에 들어와 뿌리내리게 된 것이 이 나라 의료를 정체되고 낙후된 상태로부터 구원해낸 기념비적인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서양의학의 이론과 임상적 잣대만이 모든 의학의 진보여부를 평가하는 의미 있는 기준이 된다. 이런 눈으로 볼 때 그동안 한의학이 밟아왔던 나름대로의 역사적 발전과정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한의학이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지난 400년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는가?
중국의 경우 청대의학은 이전의 의학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명말청초부터 고증학적 경향이 사상계를 지배하면서 중국의학 분야의 연구자들도 이전의 의학경전들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성현의 글이라 하더라도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자신들의 임상경험을 중요한 판단근거로 취급했다. 이런 경향은 16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醫案(Medical case records)과 17세기부터 특정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서(Disease mono graphs)들의 출판이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론적인 면에 있어서도 명청시대는 기존의 의학이론에 대한 비판, 논쟁과 함께 명문학설, 장부변증논치, 온병학 등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고 발전되는 등 학술적으로 활발했던 시기였다.

즉, 서양의학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의 전통시대에도 중국의학은 나름대로의 활력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의학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서양의 ‘근대’와 ‘과학’의 영향 때문이다. 1920년 중국 최초의 근대적인 의학사로 꼽히는 《中國醫學史》가 출판된다.

이 책을 쓴 陳邦賢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주된 아이디어는 서구적인 역사 모델, 과학의 진보, 그리고 문명(civilization)이었다.
陳邦賢은 소위 서양의 ‘근대’ 개념에 포함된 표준들을 수용했으며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학이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기원들로부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의학으로 진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그의 의학사의 목표로 삼았다.

‘근대’는 서양학자들이 중국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했지만 陳邦賢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학을 근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서양의 ‘근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중의사나 중국의학 애호가들의 관점이기도 했다.
이들은 중국의학이 서양의학에 비견되는 근대적인 의학으로 보이게 하기를 원했고 서양의 근대에 부합하는 의학이론과 치료법을 취사선택하여 중국의학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의학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라는 잣대에 부합되는 의학이론이나 치료법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대부분 도태되었다.
20세기의 현대 중의학을 만든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중국의학의 과학화이다. 중국에서 과학주의(scientism)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19년의 5.4 운동이었다.
그러나 5.4 운동 후 지식인층에 과학주의가 크게 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학계에는 폭넓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중국의학의 과학화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주로 양의사들이었으며 이에 맞서 중의사들은 19세기말 唐宗海가 제시했던 중의는 氣化, 서의는 解剖라는 도식을 통해 양의사들의 중국의학에 대한 공격에 대항했다.
하지만 레이 샹린(Hsiang-Lin Lei)의 연구에 의하면 1931년 國醫館 설립을 계기로 중국의학계에서 중의과학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國醫館은 잘 알다시피 1929년 2월 24일 南京 국민당 정부의 제1차 중앙위생위원회에서 余雲岫 등이 제출한 중의폐지안 통과에 대한 중의약계 반대투쟁의 성과물이었다.
레이는 國醫館의 설립제안서, 中央 國醫館 整理國醫藥學 學術標準大綱 등에 중의과학화가 중요한 목표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중시하여 중의과학화가 정부를 場으로 한 중의와 서의의 투쟁에서 마치 휴전협상 조건과 같은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즉, 중의학계는 余雲岫 등이 제출한 중의폐지안의 근거 네 가지 중 두 가지가 중국의학의 비과학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으며, 투쟁과정에서 중국의학계도 이런 측면을 일부 인정했고, 교육부나 위생부도 분명하게 중국의학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중의학계는 투쟁과정에서 중국의학의 존속과 자신들의 지위나 직업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중국의학을 국가에 쓸모 있는 것으로 변화(중국의학의 근대화, 과학화)시켜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제도권으로 진입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했던 것이 중의과학화에 대한 중의사들의 극적인 입장 선회를 가져온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았다.
이렇게 시작된 중의과학화 프로젝트는 1956년 毛澤東에 의해 지지받았고 아직도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의 동향은 중의학계 내부에서 기존의 중의과학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중의과학화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중의과학화가 중의학의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적인 비판을 받아들여 중의학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에서 중의현대화를 추진하고, 기존의 중의과학화는 중서의 결합 의사들이 주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중국의학의 근대화와 과학화는 현재의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CM)을 과거의 중국의학과 전혀 다른 의학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차이 때문에 현재 중국의학을 연구하는 의학사가들 중에는 현재의 중의학(TCM)을 과거의 중국의학과 분리하여 단절된 것으로 파악하려는 학자들까지 나타난다.
엘리자베스 수(Elisabeth Hsu)는 TCM이라는 용어를 1949년(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중국의학을 지칭하는 하나의 합의로 본다.

수(Hsu)에 따르면 TCM은 사회학적으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들에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추진된 것으로서 현재의 중국의학을 말하며, 개념적으로는 1958년의 중의학개론을 위시한 TCM 교과서들의 50년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고,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부활된 토착의학들(indigeneous medicines)과 유사하며 현대화(modernized), 과학화(scientific), 계통화(systematic), 규범화(standardized)를 목표로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전통적(traditional)"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구체적인 연구는 없지만 한국의 한의학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으리라 짐작된다. 1613년 동의보감이 간행된 이후 19세기 말에는 기존의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의학인 사상의학이 출현한다.
사상의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 이후의 의학적 잠재력과 조선의 사상적 풍토가 결합하여 사상의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의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서양의학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일제시대의 한의학 존폐위기 속에서 한의계는 과학 개념을 수용하게 되고, 이때부터 한의학의 과학화 내지 현대화는 한의학 연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된다. 이것은 1930년대 신문과 잡지 지면을 통해 이루어진 동서의학 논쟁에서 이미 한의학의 과학성이 논쟁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이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과학 개념은 당시 수준의 과학이 아니라 한의학의 진가를 밝혀낼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과학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과학 개념을 수용하고 한의학에도 적용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1930년대 한의학 부흥운동을 주도한 조헌영과 1960, 70년대에 활동한 윤길영과 같은 한의학자들은 한의학의 이론과 임상 속에 숨어있는 과학성을 찾아내고 이를 현대화하여 발전시킴으로써 한의학을 과학적 의학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의 한의학을 특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 결과 오늘날의 한의학은 과거의 한의학과는 전통시대 중국의학과 현대 중의학이 다른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 한의학도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국가가 요구하는 다양한 표준화를 통해 체계적이고 과학적 의학으로서 위상을 갖추어 가고 있다.
한의학의 근대화나 과학화의 功過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중의학이나 한의학은 서양의 ‘근대’와 ‘과학’과 만나면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의학으로 탈바꿈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에 이것과 비례해서 엘리트 의학에 포함되지 못했던 다양한 치료기술이나 민중의료로서의 활력은 실전되고 소멸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의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이런 평가에 있지 않다.
이 글의 초점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의학은 결코 수백년 동안 정체된 채로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화론자, 과학론자의 입장에서 볼 때 20세기 이후의 한의학의 발전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을 지난 세월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정체된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의학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체로 한국의 서양의학자들은 서양사람들보다 더 서양적인 경향이 있다. 서양학자들도 스스로의 서구중심적인 관점을 반성하는 마당에 한국의 서양의학자들은 서구편향적인 관점을 더욱더 철저하게 내면화하여 한의학을 폄하하고 공격한다.
서구 중심적 관점에 기초하여 한의학의 역사에 접근하고 비판하는 것은 한국 의사집단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의식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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