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세월호 참사로부터, 모두의 안녕으로 가는-삶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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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세월호 참사로부터, 모두의 안녕으로 가는-삶의 기록들
  • 승인 2024.04.0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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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일을 하다가 힐끗 본 컴퓨터 화면에 속보가 떴다.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전복되었으며 학생들 모두 구조, 라는 짧은 제목을 보고 다행이다 하고 일을 계속했다. 저녁에 티브이에서 배가 넘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의 놀라움과 공포가 생생하다. 그 순간보다 그 뒤의 시간들은 더욱 참혹했지만.

올해는 2024년, 세월호 참사 후 10년이다. 10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책은 세월호 생존자, 형제자매, 동료시민의 10년의 삶을 기록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

10년. 10년동안 청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학생은 학교를 졸업했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세월호에 관해 꾸준히 발언하던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10년이 되었으니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세월호 당시에 중학생이던 동생이 있었고, 고3이고 기숙사에 있었던 형이 있었다.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해에 태어나서 세월호를 기록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감독이 된 동료시민도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인터뷰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던 친구다. 그때 당시에 <잔류학생>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사고가 난 다음, 친구들이 병원과 연수원에 있는 동안에도 학교에 가야했던 친구. 친한 친구가 사망한 상황에서 <저렇게 고통스러운 친구들보다 내가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 물으며 슬픔을 안으로 숨겨야 했던 친구, 그 친구가 세월호 생존자로써 <운디드 힐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읽기가 마음이 아팠다. 모든 인터뷰마다 어느 한 구절에선가는 눈물이 울컥했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기는 어려웠다. 읽다 쉬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인터뷰에서는 몇 가지 공통적인 느낌들이 있다. 죄책감과 책임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책임감. 생존한 친구는 사망한 친구의 부모님에게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다. 생존한 친구 중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에게, 조용히 살았던 친구는 미안하다, 라고 말한다. 다들 본인이 고통을 느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 친구의 삼촌이라며 정보를 얻어내던 기자들이나, 무심코 던지는 말들에 반응하기 힘들었던 경험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격들. 그 와중에 뜻밖의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도 곳곳에 숨어 있다. 그렇게 10년을 겪으며 그들은 나 개인의 삶으로부터 사회와 연결되거나, 세월호를 기억하거나, 또 다른 참사(이태원참사)나, 또 다른 생명들로 확장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을 담담히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일이 없었더라면 이 수많은 고통들, 숨겨져 있을 더더더욱 큰 고통들이 없어도 되었는데. 진상을 규명해서 진실과 책임이 명확해졌다면 이 마음속의 짐이 훨씬 가벼워졌을텐데.

이 책에서 인용된 표현 중에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分人)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그때 사망한 304명의 사망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연쇄되어진 숫자는 몇천명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세월호는 안전에 대해 각인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벌써 10년이야? 라고 나도 문득 생각했다. 세월호 생존 친구들에 관한 영화를 극장에 가서 봤던 게 언제인가 하고 찾아보니 2017년이었다. 인터뷰 중에 ‘벌써 10년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기운이 없어지고 축 쳐져서’ ‘아직 10년밖에 안됐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마흔이 안 된 나이니까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구절이 찡했다. 이 친구는 몸에 타투를 새기는데 ‘세월호 참사와 기억으로 시작해서 모두의 안녕으로’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인터뷰어의 말에 그런가요 하고 되물었다. 이들은 모두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언급하고 있다. 상처 입은 자가 다른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하고 보살피는 연대.

나는 아마 또 10년이 지나면, 벌써 20년이야? 라고 말하는 어른으로 나이 들어 갈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정혜신 박사님이 해주신 얘기가 있었다. “2중대여도 괜찮다 1열에 설 용기가 없으면 뒤에서 2중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그러다 그 2중대가 어느 때 1열에 설 때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그 모든 삶은 괜찮다고. 손을 내밀 때 손바닥을 부딪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록하는 책이나 영상들이 나온다면 그것들을 읽고 공감하고 그 순간이라도 같이 기억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기라도 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고통과 슬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녹아 있어서 10대 후반과 20대의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20년이 지나도 이렇게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들을 누군가 계속 해 주시기를, 더불어 부탁드리고 싶은,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에도 감사한 마음이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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