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창립50주년 기념특집(5·끝) - 세계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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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창립50주년 기념특집(5·끝) - 세계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
  • 승인 2004.03.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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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 깨어있어야 역동성 살아난다
50年史는 수난·투쟁·제도권 進入史
한의학정체성 회복에 관심 쏟을 때

사진설명-창립50주년을 맞은 한의협은 한의학의 정체성 회복 등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에 들어설 한의협회관 조감도(예비 試案).

연재순서
1) 외연의 확장과 내포적 발전
2) 갈등과 대응
3) 평등의료운동의 성과와 과제
4) 한의협 조직의 발전과 한계
5) 세계로 미래로 가기 위한 조건

한정된 시간과 지면으로 50년간의 방대한 역사를 정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리인 줄을 잘 알면서 나름대로 지난 세월을 훑어보았다.

그 느낌은 그야말로 파란과 격동의 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지난한 세월이 지금을 살아가는 한의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하는 점에 있어서는 개인적 느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파란’과 ‘격동’이란 표현만으로는 역사를 의미부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의협 50년사는 어찌 보면 수난사의 측면도 있고, 달리 보면 수난에 대응한 투쟁사의 측면도 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소 진취적인 제도권 진입사이기도 했다. 한의학의 공급자 측면에서 보면 보신의학에서 치료의학으로의 변신에 몸부림친 역사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중화에다 현대화, 세계화까지 언급돼 한의학의 역사는 소수 귀족중심의 특권의료에서 다수 대중을 위한 평등의료로, 주관적인 의학에서 객관적인 의학으로, 국지적인 의학에서 세계적인 의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얻은 것과 잃은 것

한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취한 것과 잃은 것이 공존한다. 그간 한의계가 추진해온 치료의학, 대중의학, 세계의학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과거에 비해 진전된 분야로 기록될 만하다. 이는 일제이래 지속되었던 한의학 말살정책과 양의약계의 한의학 매도, 비하, 폄하와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된 법·제도에 비추어 보면 놀라운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들어 비로소 싹이 틔기 시작했을 뿐이지만 학술, 연구, 임상, 공공 등의 분야에서의 변화는 뚜렷하다. 이런 성과는 한의계 스스로의 노력과 희생, 그리고 사회의 발전 및 산업화에 힘입은 바 크지만 때로는 한의학 자체가 내포한 우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의학의 치료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없을뿐더러 법적 제약이 허술했던 것이 무면허업자와 유사의료업자의 범람을 이루고, 양의사와 양약사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한의학이 홍보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반면 한의계는 대중화, 세계화, 혹은 현대화에 의해 시련을 맞기도 했다. 한의약의 이용량 증가는 한의학을 정부와 국민의 관심권내로 끌어들여 감시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약재의 오염과 유통질서의 문란으로부터 오는 책임, 치료비의 규제, 치료효과에 대한 이의제기 등은 한의학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급격히 부상했다. 이는 한의계가 그토록 갈구했던 제도권 진출에 따른 반대급부였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잃은 것이라기보다는 제도권내에 정착하기 위한 과도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세련된 한의학으로 가는 촉매제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잃은 것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문제였다. 서양의학으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비난공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洋診韓治’가 한의계를 혼란과 분열에 빠트린 것이다. 양진한치는 본질적으로 객관성이 떨어지는 진단부분을 양의학을 통해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방병원 시스템으로 굳어지고, 그 결과 개원한의사와 한방병원 근무한의사 간에 틈이 벌어졌다. 이제는 개원한의사 중에도 진단만큼은 양방의 진단장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개원한의협의회 창립의 여파

병원과 개원가의 충돌은 급기야는 한의사전문의제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1, 2차 시험 당시 병원교수들은 병원에서 전문수련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만 전문의 응시자격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개원가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때 한의협은 병원교수와 개원가 사이에서 형식적으로 개원의 입장을 두둔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좌고우면을 계속해야 했다. 한의협은 모든 한의사들의 대표단체이므로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병원교수와 수련의, 병협측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탄생한 조직이 개원한의사협의회다. 지금까지 한의협은 개원의의 전유물이었던 것으로 착각했던 개원의들이 전문의시험을 둘러싼 갈등과정에서 비로소 개원의를 위한 조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반대로 한의협은 협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의협은 분회-분회-중앙회라는 단순한 조직형식에서 벗어나 개원의-대학-학회-연구소를 아우르는 통괄조직으로서 위상재정립을 향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한 마디로 상명하달의 관리기능을 주로 하는 수직조직에서 상호 대등한 조직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수평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에 한 목소리

한의협 조직이 수직조직에서 수평조직으로 바뀌어야 하는 필요성은 예전부터 거론돼 왔다. 사회가 갈수록 전문화되는데 언제까지나 한의협이 1만2천 회원의 손발노릇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게 사실이었다. 인접단체의 변화양상도 한의협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의협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투쟁을 통해서 경로당(?) 같은 의협을 환골탈태해 젊은 조직, 정책조직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두뇌조직으로서의 의협은 산하에 의료정책연구소를 설치한 데서 잘 나타난다.

이런 변화를 읽고 있다는 듯이 뜻있는 한의사들은 이제 한의협이 전략사령부로서 기능을 할 때가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사고해야지 시시콜콜한 문제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사교클럽 같은 모임도 요구된다고 말한다. 한의계 단체장들이 수시로 모여서 한의계 현안을 논의해서 일련의 흐름을 창출해내는 역할을 사교클럽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의정회가 이 클럽의 기능을 대신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는 한의정회의 역할이 기대된다.

학문적 줄기를 형성하기 위한 학회원로회의의 구축도 한의협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외에도 비한의사 전문가의 사무총장 영입 등 각 분야의 전문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한의대에서도 졸업예정자들의 진로지도시 개원이외의 분야로 진출시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물밑작업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한의협도 주변의 변화에 맞추어 틀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지만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은 다 알지만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과 추진주체가 분명하지 않으면 공허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변화를 어떻게 일으킬 것인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한의사 모두가 의식이 바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걸출한 지도자가 변화를 설계해서 강력하게 밀어 부치는 것이다.

전자는 다수 한의사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므로 한의대 교육목표를 재설정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고, 후자는 하위조직에서부터 엄격한 훈련과 검증을 거친 사람만이 상위조직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누가 거기에 방울을 다느냐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주도할 총설계사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답답할 뿐이다. 언론이 맡아주기를 기대하는 부류도 있지만 언론은 문제를 제기할 뿐 집행기능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나의 방법으로서 개별 한의사의 존재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형사건을 활용하는 방법인데 한의계는 초대형 사건인 한약분쟁을 통해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지만 뒷심부족으로 좋은 기회를 놓친 바 있어 이른바 대형사건활용론은 준비 안된 조직에게는 효용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저 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조만간 초대형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의료시장개방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다 대체의학의 유입, 의료일원화 압박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한의협은 이에 대비해서 한의학 교육프로그램 개편 등의 용역을 의뢰해놓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효과적인 대책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12월 16일이면 50년간 험난한 세월을 헤쳐온 한의협은 새로운 50년을 향해 다시 긴긴 항해를 시작한다. 과거보다 수월할지 아니면 훨씬 더 고달픈 항해가 될지는 지금 이 순간 문제의식을 얼마나 느끼고 지혜로운 대책을 세우며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과 같이 과거에 발목이 잡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소모적인 회무를 되풀이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끝>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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