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기반 없인 한의학 발전 없다(1) - 프롤로그
상태바
공적기반 없인 한의학 발전 없다(1) - 프롤로그
  • 승인 2004.03.15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한의학 연건 급변 '한의학적 기준 빚기'서둘러야

얼마 전 국립암센터 원장이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은 암치료약물의 mother-test 개념을 주창하여 소리 없는 관심을 끈 적이 있다. 한시가 급한 암환자에게 임상실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으므로 나(의사)의 어머니에게 투여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면 암환자에게 투여하는 행위를 용인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는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이지만 윤리적으로 허용된다면 초법적인 행위라도 인정돼야 함을 의미한다. 아직 정부 차원에서 인정된 바 없지만 정책당국자의 입에서 그 취지에 ‘공감한다’는 언급이 나온 바 있다.

私學과 개인의 굴레 속에서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순한 사건이었지만 안목 있는 사람들은 행간을 읽을 수 있었다. 아하, 의학은 이런 경로로 한계상황을 돌파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런 상황을 한의계에 적용시켜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 그럴 가망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과거 약침제제가 문제되었을 때에도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약사법의 벽을 뛰어넘어 한의학적 특수성을 인정받은 바 없었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이렇듯 한의계의 자세와 양의계의 자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양의계는 양방의학의 발전선상에서 학문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법률, 행정, 제도, 국민의 의식, 종교윤리 등의 문제까지 연구해 정책에 반영하는 수순을 밟아나가는 데 반해 한의계는 걸려있는 현안조차 어떻게 대처할 지 머뭇거리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두 의료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양의계가 무슨 일을 할 때면 수가문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무슨 치료가 성공하지 못했어도 의료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하여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데 비해 한의계에서 치료하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이 한의사에게 전가되고, 심하면 한의학 전체를 불신하기 일쑤다. 특정 의료에 호의적인 국민들은 무슨 치료제라도 개발되면 자신이 임상실험을 자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한의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약재시장에서 불량약재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한방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며, 한방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가 부작용이라도 발생하면 금새 한의학의 가치 문제로 비화된다.

사적 의료의 울타리를 넘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도 세월이 흐르고 새 천년이 시작되었는데도 말이다. 한의학 관계자들은 그 원인이 깊다고 진단한다. 교육의 문제다, 어설픈 서양화의 폐해다, 한의학에 대한 음해다, 학문의 한계다 등등 지적은 밑도 끝도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한의학이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한 마디로 한의학의 公的 기반이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공적 기반이 부재하다고 하면 일선 한의사들은 한의학이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추세인데 무슨 소리냐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이다. 그러나 한의학이 일부 제도권에 포함되었다고 한의학이 사적 의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거나 혹은 공공성을 띠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성급한 측면이 있다.

한의학이 공적 개념에 부응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개개 의료인별로 다른 예방·진단·치료·예후판단 등을 공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공통적인 그 무엇이 설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공적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표준화된 의료행위’ 내지 ‘한의학적 기준’이 대표적이다.

표준의료행위 내지 한의학적 기준은 논문보고-검증-교과서 등재의 순서로 나가는 양방적 시스템을 참작하여 한의계도 책임있는 기관에 의해, 한의학적 기준을 설정하여, 이 기준에 의거하여 사례보고를 하고, 최종적으로 교과서화하는 시스템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에 의해 인정되고 국가정책에 반영되는 표준화된 한방의료행위의 연구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한의계내에는 국공립 의료기관과 의과대학, 연구소, 나아가 정부의 보건복지예산으로 지원받는 양방과 달리 시스템 내지 틀, 도구(tool)를 빚는 기관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한의학을 향해

한의학을 둘러싼 의료환경은 나날이 급변하고 있다.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의료직과 약무직이 역할분담과 상호 감시하는 의약시스템이 구축됐고, 지역적으로도 국지적 의학에서 세계인이 애용하는 의학으로 바뀌었다. 또 의료정보가 팽창하면서 의료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진 상황이다. 국가도 비용과 효과를 따져 예산을 수립·집행하는 추세다.

게다가 최근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정부의 유권해석은 면허범위에 맞는다면 의료영역에 관계없이 개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의학계에도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공신력있는 한의학적 기준을 제시하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적 의료영역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2002년도 한의계는 이런 상황변화에 대응하여 한의학의 수준을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여러 가지 처한 환경이 열악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난관을 타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공적 시스템을 빚어내는 일. 그것이 올해의 핵심적인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을 위해 한의협-학회-대학-연구원은 협력을 강화하여 한의학 발전의 백년대계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본지는 한의학의 공적 개념 정립을 위한 일련의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다소 거칠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이 란은 독자여러분에게도 열려 있음을 밝히면서 많은 관심과 의견 제시를 기대한다.

김승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