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정체성에 관하여⑥ - 한의학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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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정체성에 관하여⑥ - 한의학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下
  • 승인 2011.11.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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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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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지혜와 통찰 담긴 한의학, 우리 스스로 존중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인류의 지혜와 통찰 담긴 한의학,
우리 스스로 존중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글 싣는 순서>
1. 한의학의 기본전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
2.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문명 비판적 접근
3,4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의학적 접근 上,下
5,6. 한의학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上,下
7. 한의학의 정체성 확립과 동시에 시대성 확보에 대한 가능한 접근에 대한 논의

 

서양의학 과목들도 보면 양의학계에서 한의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양의학계에서 한의대의 학생들을 상대로 행해지는 양의학 수업들에서 그 충실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서양의학 과목들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이다. 다분히 형식적으로 불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학부과정에서 열심히 한의학을 위주로 가르치지만, 어느 순간 서양의학이나 자연과학이 요구되는 현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학부 때부터 실험과 연구가 제대로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의약학대나 자연과학대를 기웃거리게 되어 배경철학이나 지식이 전혀 다른 서양의학에 그저 따라가야 하는 현실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의학이라는 재료와 아이디어 심지어 재정적인 지원까지 그들에게 주고 말았다.

「동의보감」,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원리 체득 필요
「東醫寶鑑」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금 임상에서 「동의보감」을 과목별로 분류해서 가르치고 있다. 임상 각 과목에서 가르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동의보감」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를 체득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불만이 학생들을 「동의보감」 동아리 모임으로 이끌고 있다고 본다.

최소한 「동의보감」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원리를 보완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 선생의 판단가치를 학습시켜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동의보감」은 明代까지의 한의학이다.

淸代 한의학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淸代 한의학으로 「동의보감」이 보완되어야 하지 않는가? 淸代 한의학의 학풍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본다. 溫病 理論이 나왔고 질병의 해석에서도 本草에서도 藥理說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淸代 한의학의 보강 없이 바로 사상의학으로 진행된 한국의 한의학은 분명히 청의 침범과 관련한 조선 지배층의 논쟁의 결과로 보인다. 청을 중국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척사파의 입장과 인정하자는 주화파의 논쟁이 있었고, 조선은 이때부터 소중화로 자처하면서 중국보다 더 중국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존감을 키우다 멸망해 버렸다. 덕분에 한의학의 위치도 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혹시 이런 태도가 한의학에서 중국보다 더 한의학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는지?

동양은 중국이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역사가 진행되면서 역동성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면만 발달했다. 이것이 한의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전혀 변화가 없고 오로지 연역적 방법으로 사유하지만은 않았다. 경험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는 귀납적인 사유가 병행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한의학에서 Text로 규정하는 「동의보감」은 하루빨리 청대 한의학으로 보완되어야 마땅하다.

임상에 관한 문제 특히 대학병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거의 고정된 몇 가지 질환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1984년경부터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최근에 건강식품이 각광받기 시작하고 거기에 한약 중금속 문제까지 제기되어 임상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있다. 창고에 저장된 치즈를 열심히 먹다보니 없어지는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없어지고 나서 누가 우리 치즈를 옮겼냐고 불평하는 얘기다. 물론 이런 상황을 파악한 다른 쥐들은 미리 다른 곳에 있는 치즈를 찾아 나섰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의계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을 때 다른 치즈를 찾았어야 했다.

한의계와 서양의약학계의 이중성
다음으로 연구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의학적인 시스템에 한약이나 침의 효능 확인하기 정도이다. 한의학의 자체 검증시스템을 세우기 위한 연구는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한약으로 신약개발하기나 단발적인 효능확인이라면 시간과 돈과 노력만 소모될 뿐이다. 한의학적 가치를 구현해 내는 연구가 진행되어 한의학 자체 검증시스템을 세우지 않고 의학계와 경쟁을 하게 될 때 많은 데이터를 내는 쪽이 승리할 것이고 그러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이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서구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한의계 내의 분위기를 말하자면, 지금은 이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한의학은 실험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실험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한의계 내의 이중성이다.

그리고 서양의약학계를 비롯한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한의학을 재료창고로 취급하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하여 우선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옛날부터 raw data로 있는 한약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한의학의 고유 가치는 사라지고 재료로서만 한의학을 대하고 있고, 여기에 우리도 편승한 면이 있다. 이런 식의 공동연구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은 비과학적이고 없어져야 한다면서 신약개발을 위한 자료로 한약을 뒤지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한약이 사용되는 것은 그리고 임상효과를 내는 것은 한의학적 이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약을 재료로 한다는 것은 한의학을 재료로 한다는 것이다. 이론을 무시하고 물질로서 재료로 한약만을 다루면서 효능을 참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한의학을 과학화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우리가 접근하려 하는 것을 차단한다면, 이는 한의학과 한의학을 다루고 있는 현재의 한의계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자신들이 하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얘기 밖에 안된다. 여기에 한의계와 서양의약학계의 이중성이 있다.

서구가 아시아에 행했던 폭력, 학문에 그대로 반영
역사적인 문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한일강제합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적인 모든 가치는 부정되고 피식민지에 와서 식민지배자로서의 입장에서 더구나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나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었는지 뻔하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생각하는 때 한의학은 없어져야 할 비합리가 된다. 더구나 그 당시 교육은 철저히 이성 중심의 기계론적이고 개인적인 가치가 중심을 차지했다.

자문화 중심적인 데다가 서구의 합리주의 그리고 식민지에서 지배자의 입장이 어우러져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그 교육에서 한국적인 가치는 무시당하고 그 결과로 한의학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역사의식이 왜곡된 상황 하에서 한의학을 함부로 대하는 현상이 생겼다. 한약을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한의사들의 고유한 권리는 무시해도 되는 실정이 되었다. 최근에 국내에서 개발되는 신약이 한의약을 바탕으로 한 경우는 한의사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해야 할 것이다. 주체가 누구인지의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

한민족이 앓고 있는 역사적인 모순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한의학의 문제를 단순히 한의학이 비과학이라고만 몰아치지 않았으면 한다. 거기에는 상당히 편협된 역사의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서구가 아시아에서 행했던 폭력이 학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의학의 고유 가치를 포기하지 말자
정리하자면 현재 한의계는 기준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늘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해석되고 있는 내용을 검토할 자체 검증시스템이 부족하며, 한국 한의학으로 내용이 구비되어 있는 면도 약하다.

외부 현상만을 추구하다 보니 부족감을 느끼거나 한두 가지 parameter로 점검하려 하는데서 오는 거부감이 있고, 전체적으로 「傷寒論」이나 「동의보감」을 가르치지도 못해서 포괄적이고 통전적인 한의학의 시각을 놓치고 있다.

시대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동의보감」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적이며, 몇 가지 질병에 치우쳐 에너지를 집중하다가 의료시장에서 위치가 축소되어 버렸다. 자체 연구능력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고, 우리 것을 마구 퍼가도 항의도 못하고 권리주장도 못하고 있다.

더 이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때가 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한의학의 고유 가치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서양의학의 흉내 내기는 곤란하다. 당장 시급하게 시작해야 할 과제로서 포괄적이며 통전적인 한의학의 체계를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확보하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현재 한의계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고 각각에 대한 판단이 있으나 여타의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한의학을 정당한 의학과 과학으로 인정하고 다루어 주기를 거듭 당부한다. 또 인류의 유구한 지혜와 통찰이 담긴 한의학을 우리 스스로 존중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태 희 / 경원대 한의대 방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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