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정체성에 관하여②-한의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문명 비평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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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정체성에 관하여②-한의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문명 비평적 접근
  • 승인 2011.10.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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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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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경원대 한의대 방제학 교수)

내경적인 삶이나 문명 비판적인 의식 결여된 한의학
‘上古天眞論’과 ‘四氣調神大論’의 가치는 현 문명의 대안

<글 싣는 순서>
1. 한의학의 기본전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
2.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문명 비판적 접근
3.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의학적 접근
4. 한의학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
5. 한의학의 정체성 확립과 동시에 시대성 확보에 대한 가능한 접근에 대한 논의

 

이  태  희
경원대 한의대 방제학 교수

문명 비판적 접근은 의학 외적인 것처럼 보이며, 의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질병이 삶의 결과이며, 그 삶의 바탕에는 심리적 사실이 숨어 있고 더구나 그 심리적 사실을 결정하는 데는 철학적 관점, 즉 그 사람의 인생관이 숨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복합적 환경 배제한 채 결과만 다루는 의학의 한계

사실 우리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바로 질병으로 뛰어들어 병만 고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질병은 자꾸 변한다. 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변이가 일어나면서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질병의 양상이 바뀐다. 그래서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사람은 약과 병에 의해서 양쪽으로 부담을 받게 된다.

현대에 와서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은 의학이 기여한 것보다는 전체적인 삶에서의 혜택이 많아지면서 생긴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그 산업혁명 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식생활이 개선되고 그 다음에 산업화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음식의 섭취와 삶의 여건이 좋아지면서 현재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질병만 치료하는 입장을 고수하여, 복합적인 환경을 배제한 채 최종적인 결과만 다루는 의학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시대이다. 산업혁명이 완료되기 전에는 절약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완료되고 난 후는 계속 생산시설을 가동시켜야 하고 자본의 회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상품이 나와야 하고 그것을 소비해 주어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자본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삶은 보다 복잡하고 피곤해졌다.

지금 우리나라 수준의 소비를 하며 사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중에 대략 1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90% 정도는 하루에 2달러 정도로 살고 있다. 한쪽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삶이 찌들고, 한쪽은 못 먹고 못살아서 삶이 찌들고 있다. 한쪽은 성인병이 문제가 되고, 한쪽은 영양결핍이 문제가 된다.

병을 얘기할 때도 선진국형 질환과 후진국형 질환을 얘기한다. 그러나 병이라는 관점에서는 다 문제가 되지 않는가? 통계만 해도 그렇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몇 %라고 얘기해서 자신이 그 중에 포함되지 않으면 될 것으로 여기지만, 병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 질병에 걸릴 확률이 100%인 것이다.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한 문명의 문제점

우리의 문화는 현재 석유화학의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농산물의 생산에서도 비료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그 식품의 유통과정에서 에너지원으로서 석유가 사용되고 있으며, 소비과정에서도 냉장고와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석유화학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품도 석유에서 합성을 하고 있으며, 기타 소모품들도 거의 석유화학제품이다.

초기에는 천연물에서 추출해 내지만 대량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합성을 하게 된다. 유기화학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대량 유통되고 있는 가공식품도 마찬가지이다. 공장 생산의 과정을 통과하기 때문에 에너지원으로서 전부 석유가 사용된다. 축산물의 경우에도 사육과정에서부터 도살, 그리고 유통 소비과정까지 다 석유가 소모되고 있다.

지금처럼 현재의 문명이 큰 무리 없이 진행되면 어느 정도는 지탱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석유자원의 양은 한정적이며, 결국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략 50년에서 100년 정도면 소진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우리의 문명이 중지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덜 만들고 덜 쓰고 덜 먹고 천천히 살자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광우병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가 막힌 질병이지 않은가? 소에게 쇠고기를 먹여 생긴 질병인 만큼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결과가 만들어낸 질병이라 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있는 육류, 생선류의 경우에도 또한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이들에게 거의 대부분 항생제와 성장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게에 비례해서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양적인 생산을 위해서 육류, 생선류에는 통상 항생제와 성장인자를 사용한다.

질병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결과는 현재 한국 아이들의 좋은 체격과 체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정상적으로 영양이 개선되어 자라서 체격과 체력이 증가한 면도 있지만, 성장인자에 의해 체격이 좋아진 면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점이 형체에 비해서 기가 약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항생제 과다 복용 후유증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항생제나 성장인자의 섭취를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가 과도하게 음식을 섭취하고 활동할 때 우리 몸에서 superoxide, hydrogen peroxide 등의 free radical이 발생하게 되어 세포막을 태워서 파괴시킨다. 달게 먹고 짜게 먹고 많이 먹게 될 때 뇌는 쉽게 흥분하게 되며 신경 파괴현상이 생긴다.

연구 부분에서도 서구 의학계가 고도의 발달을 구가하고 있고 한의계가 그것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그 뒤를 좇아가려 하고 있으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의 상당수가 석유문명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석유생산이 고갈되고 나면 의미가 상실될 것들에 대해 우려해 보아야 한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도 우려할 점이 있다. 우리는 질병에 전혀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그냥 불편하니까 빨리 불편을 제거하려고만 하지 질병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질병만 관심이 있지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기능에 문제가 생겨 감염이 되었다고 하자. 이럴 경우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하고 淸熱瀉火劑를 복용시킨다 해도 치료가 잘 되는 듯 하면서도 안 될 확률이 높다.

이 때 그 사람의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약효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너무 과로하여 감염이 일어날 경우 처방을 하기 전에 먼저 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위에서 말한 석유화학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발생하는 음식문화, 질병치료에서 표면적 접근과 한계성은 근대에서 생긴 기계론적 세계관 때문이다. 갈릴레이가 계량화를 시작하고 데카르트, 뉴턴, 베이컨이 기계론적인 관점을 제시하면서 일어난 문제인 것이다.

한의학의 사회적·역사적 책임은?

지난 기고문에서 한의학이 관계중심의 의학이며, 통전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한의학에서 병인을 ‘六淫’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중국의 한 온병학자는 “지리적 환경, 그 환경 속에서 자라는 병균, 그리고 인체의 반응을 다 합해서 ‘六淫’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내경」 소문의 첫 두 편, 즉 ‘上古天眞論’과 ‘四氣調神大論’에서 자연의 규율에 맞춘 균형 잡힌 삶의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이 빤한 상식을 말하고 있고, 더구나 농경시대에 적합한 삶의 조건을 말하고 있어서 현재에 얼마나 적용가능한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문명이 야기한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인식한다면, 그리고 석유문명의 종말 이후를 생각한다면, 지역중심의 작은 공동체 문화로서 「내경」에서 말하는 삶의 방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석유화학 에너지에 기반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형태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활규모를 축소하면 된다. 생산량을 줄이고 활동량도 줄이고 소비도 줄이면 된다. 그리고 남는 것은 나눠 쓰면 된다. 이미 이러한 주장은 한의학에서 「내경」 소문 이래로 몇 천 년 동안 강조해 온 점이기도 하다.

현재 한의계가 취하고 있는 방향성은 내경적인 삶이나 문명비판적인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즉, 한의학이 고유로 주장해 왔던 삶의 방식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치료성과를 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한의학은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양생으로 접근했고, 양생이 해결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질병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가치를 살리지 못하고 바로 질병으로 접근하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삶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경」 소문의 첫 두 편 ‘上古天眞論’과 ‘四氣調神大論’에서 말하는 내용은 현재 문명에 대한 중요한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동시에 의료의 한 축으로서 한의학은 한 시대를 담당하면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 면에 있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의료계마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패턴으로 치우치면서 사람이 대상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문명적 대안으로서 가치를 온전히 부활시키고 구현해 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단순한 임상의학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한의학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한의학을 발달시켜야 할 것이다.

이태희
경원대 한의대 방제학 교수

<필자 약력>
1982년 경희대 한의대 졸업
1991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박사학위 취득,  (전공 본초학)
1990년~현재 경원대 한의대 교수
2001년~2002년 경원대 한의대 학장 및 한의학 연  구소장 역임
2010년 대한한의학방제학회 회장 역임.
現 대한본초학회, 뇌신경과학회, 대한한의학방제학회 이사, 한국스트레스학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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