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78) - 「愚岑漫稿」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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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78) - 「愚岑漫稿」③
  • 승인 2011.02.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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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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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草 같은 존재, 國老로 불린 醫人

 

우잠만고, 고려대학교 소장

나이가 들어 그는 자신의 지나온 일생을 돌이켜 보며 ‘내 나이’[吾年]라는 시를 짓는다. 여기서 그는 “내 나이 여든, 치욕이 많았는데 / 차츰 세속의 인연 헛됨을 깨닫네 / 한가롭게 지내며 장수하니 神仙術 배울 필요 없고 / 괴로운 일에도 근심 없으니 술도 무용지물……”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는 나이 80을 넘겨 당시로선 매우 장수하여 부러운 나이였으나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 인생을 그리 떳떳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며, 고독한 만년을 지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老境에 이른 그의 심사는 다음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원생활 꿈꾸지만 궁리가 이미 늦었고 / 功業은 마음처럼 이뤄지지 않으니 부끄럽기만 하구나.” [自嘆]

그러나 그는 만년에 이른 1880년 國耆會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는데, 그에게 헌사된 族姪의 시 [愚岑翁賜國老會韻] 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몹시 좋아하여 陰陽과 稗史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장수하여 고령이 되자 마을에서 추천하여 정3품 通政大夫에 제수되었고, 곧이어 護軍 벼슬에 제수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이미 80이라 하였으니 그는 아마도 1800년경에 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가 만년에 수여받았다는 품계와 관직은 이른바 ‘壽職’이라는 것으로 조선시대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주었던 명예직이다. 일명 老人職이라고도 하는데, 유교적인 敬老思想에 따라 시행한 것이다. 대개 實職이 아닌 散官職의 品階를 수여하였다.

수직은 조선 초기인 세종 때부터 시작되어 성종 12년(1481)에 법제화하여 「經國大典」에 명문화되었을 정도로 조선왕조에서 일찍부터 시행했던 제도이다. 대개 각 도별로 관찰사가 良人이나 賤人을 막론하고 80세 이상인 노인의 명단을 뽑아 이 가운데 예전에 이미 수직을 수여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후 吏曹에 보고하여 品階를 주도록 하였다. 이미 품계를 가진 자는 1계급을 올려 주었으며, 당상관은 임금의 특지로 수여하였기에 온 나라의 어른인 國老로 대접받았다.

잘 알다시피 본초에서는 모든 약의 독성을 해독하고 中和시키는 감초의 효능을 두고 ‘國老’란 이명으로 불린다. 세상사에 달관한 80의 연세에 오른 어른이 주변에 적지 않다. 예전 같으면 모두 國家의 元老로 대접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셈이지만 요즘엔 거꾸로 복지혜택을 기다려야만할 처지가 되었으니 세태가 많이 변하긴 변한 것이다.

이어 哀詞에는 “우리 가문의 존경받는 원로 / 높은 연세 여든이시지 …… 현묘한 이치, 하도와 낙서를 연구하시고 / 평상시 보시던 책, 헌원과 기백을 궁구하셨네 / 많은 사람 구제하니 보배로운 뗏목 같고 / 살아있는 부처처럼 대자대비 실천하셨네.(후략)”라고 칭송함으로서 그의 일생을 인술을 통한 慈悲行으로 정리하였다.

고본은 권차가 적혀있지는 않으나 시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장을 달리하여 제호가 적혀 있어 전반부의 記文과 후반부의 詩部로 크게 나뉘며, 본문 다음으로는 앞서 거론된 國老會韻과 자제들이 남긴 몇 편의 헌시, 그리고 哀詞가 이어지는데 이것들은 모두 부록 형태로 덧붙여져 있다. 애사에는 ‘歲丁亥十二月’로 간기가 적혀있는데, 1887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사후에 헌정된 것들로 보인다.

이 책의 원본은 현재 고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전에 소개한 「愚岑雜著」와는 서로 자매편을 이루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후기 지방의학의 실태와 민간에서 활동한 의학인물들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관로를 버리고 의술로 인술을 베풀고 은인자중했을 한 의인의 행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소중한 책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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