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76) - 「愚岑漫稿」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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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76) - 「愚岑漫稿」①
  • 승인 2011.02.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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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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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로 자처한 儒醫 愚岑

 

우잠만고 권수(고려대학교 소장본)

몇 년 전에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愚岑雜著」(369회 賞春客의 醫案錄 / 2008년 3월 31일자, 370회 일침으로 好生起死, 조선 鍼灸醫案 / 2008년 4월 14일자)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張某라는 전라도 의원으로 성명이나 인적사항이 잘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수준 높은 의학설과 실제 체험을 기록한 의안이 수록되어 있어 흥미롭게 들여다 본 기억이 생생하다. 옥곡 장씨로 보이는 저자 우잠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그가 남긴 글과 詩作들이 담긴 문집원고가 발견되어 성급한 마음에 우선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필사 고본의 형태로 전하는 이 문집 사본은 본문에는 ‘己酉秋’, 표지에는 ‘歲壬子肇夏下澣’이라고 시기가 밝혀져 있는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가 1880년까지 생존하였으므로 기유는 저자 사후 대한제국시기인 1909년으로, 임자는 1912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저자 사후 집안에서 문집을 펴내기 위해 준비했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실제 간행에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집 초고의 첫머리는 저자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지명[先贈貞夫人李氏墓誌]으로 출발한다. 보통 묘지나 묘갈명 혹은 비문이 문집의 처음에 위치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남긴 그 어떤 글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정이 담뿍 담긴 이 묘지문을 앞세우고 싶었나보다.

이글의 끄트머리에 “……장차 후손에게 유고를 남기려 합니다. 벼루를 앞에 두고 글을 쓰노라니 슬픈 마음 기쁜 마음이 함께 솟습니다.”라고 적어 자신의 기록에 앞서 부모에 대한 회고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일생이 시작하는 시점임을 밝히고 있다. 바꿔 말해 사람의 일평생이 부모로부터 나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순환론에 의거한 인생관의 달관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1854년 11월 致喪 중에 나타난 꿈에 대하여 기록[夢錄]하였는데, 이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후에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염원과 現夢한 대로 吉地를 잡아 안장하게 된 기막힌 내력을 적고 있다. 또 保宥錄에는 葬墓를 둘러싼 집안 사람간의 반목과 갈등의 연유를 적고 후손들이 화목하고 사랑하며 지내기를 기원하였다.

愚岑自序에서는 자신의 아호인 愚岑에 대하여 이름 짓게 된 내력을 적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은 최하등의 어리석음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下愚不移]고 할 때의 어리석음이라고 겸손을 표하였지만 기실은 고대의 名醫 (秦)越人의 인자함과 賢人의 학문을 추구하는 바라고 밝혔다.

더욱이 글 속에서 그는 젊은 시절에는 定性齋, 중년에는 敬菴이라는 호를 사용하다가 50세에 이르러 愚岑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그는 이 號說에서도 오운육기의 변화[五六之變]는 저울과 같아 섭생을 잘 하는 사람은 盈虛消息을 깨달아 元氣를 거스르지 않고 神을 조절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자연철학과 의학관을 피력하였다.

이어 贈禪師序에서는 1880년 壽職으로 정3품의 通政大夫가 되었다고 했는데, 이때 이미 연로하여 중풍에 걸린 지 4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으며, 導引術로 기를 연마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려 한다고 자신의 처지를 밝히고 있다.

또 祭藥文은 의약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글로서 자신이 醫門에 들어 이름을 날린 지 30여년이나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어 그가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의업에 종사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기우제를 올리는 祭龍神文, 賀趙侯宴, 哀金侯養均辭, 性善問答, 與金侯胤鉉書, 與金參奉羽休書, 警子歌, 聾啞篇, 敬題聾啞篇後, 鳳孫三樂堂記, 自娛窩記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다음 호에서 그가 남긴 시작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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