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74) -「新刊明醫雜著」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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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74) -「新刊明醫雜著」 ①
  • 승인 2011.01.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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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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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醫北醫說의 淵源

南醫北醫說의 淵源

 

이 책 「明醫雜著」는 명대의 의학자 王綸이 方藥證治를 논한 의학논집이다.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초에 활약한 그는 처음에는 進士출신으로 관로에 들어 禮部郎中(혹 吏部郎中), 湖廣·廣西布政使를 거쳐 右副都御史巡撫湖廣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일찍이 아버지의 親患을 계기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의학의 문호에 들었다.

 

재직 기간 중에도 백성들의 질병을 고친 경우가 많아 훗날 「명의잡저」를 주해한 薛立齋는 그의 일생을 두고 “출사하여 여러 곳의 관리를 지내면서 가는 곳마다 인심을 얻었고 다른 사람의 질고를 마주하여 치료하는 이마다 효험을 얻게 되었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良相과 良醫 두 가지 모두를 겸하였다.”고 평하였다. 이런 까닭에 「醫林撮要」 역대의학성씨에 ‘儒醫’로 올라 있다.

王綸의 호가 節齋인 까닭에 고전의서에서 본명 보다는 ‘王節齋’란 이름으로 자주 등장해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동의보감」집례에서 이른바 ‘東醫自主宣言’의 기반이 되었던 ‘南醫北醫說’도 바로 그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책의 권3 ‘或問東垣丹溪治病之法’의 서두에 등장하는 글귀이다. 그는 본초학에 있어서 張潔古, 李東垣, 朱震亨 등 제가의 학설을 참고하여 「本草集要」(1492, 8권)를 저술하였다. 「동의보감」 역대의방에는 두 책이 모두 올라 있어 그의 저작이 매우 비중있게 다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丹溪附餘」란 책도 그의 저술로 거명되어 있지만 아직 실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節齋醫論」1권, 「醫論問答」1권, 「節齋小兒醫書」1권을 남겼다.

그러나 여러 저작 가운데서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은 「明醫雜著」로 주단계와 이동원의 이론을 기반으로 자신의 임상경험을 곁들여 1502년에 펴냈다. 저자는 역대제가설에 대한 견해에서 “외감은 仲景을 따르고 내상은 東垣을 따르고, 열병은 河間을 따르고, 잡병은 丹溪를 따른다.”고 천명하였다. 즉 임상측면에서 상습병증을 크게 외감과 내상, 열병과 잡병으로 구분하고 역대의학설을 분야를 나누어 추종함으로써 어느 한 일파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대로 합리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온병학이 등장하기 이전 명대 임상의학을 대표하는 관점으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의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대비해서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질병에 대한 인식의 범주를 크게 내경과 외형, 잡병으로 3대분하고 여기에 같은 병증이라도 사람에 따라 치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이후 조선의학과 중국의학을 구분 짓는 명백한 잣대 가운데 하나로 적용하게 되었다.

본서는 전6권으로 1, 2권은 의론, 3, 4, 5권은 續醫論, 6권은 방제편이다. 4권까지는 총론과 내과잡병 및 부인과, 안이비인후과, 구치질환 등의 병증이 들어 있고 5권에는 소아병증의 증치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대개 의론은 한 가지 병증에 대하여 먼저 대표방 하나를 세운 후 여기에 수증가감법을 상세하게 거론하는 방식으로 논술하였다. 이 책의 명대 초간본은 거의 산질되었으며, 薛己가 보주한 판본이 명대에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한편 1503년 徐弼이 초간본에 續醫論과 續隨證治例의 내용을 추가하여 판각하였는데, 조선에 전래된 것은 바로 이 중간본이다. 조선에서 간행할 때 이 중간본을 바탕으로 「新刊明醫雜著」라 하였는데, 日本刻本 역시 이 조선판을 모본으로 한 것이다. 다음 호에 조선판의 간행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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