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71)「剪跋蕪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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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71)「剪跋蕪詞」
  • 승인 2010.12.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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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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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의 밑거름, 茶山의 檢案

전발무사
「전발무사」는 젊은 시절의 茶山 丁若鏞(1762∼1836)이 직접 형사사건을 심의하거나 변사체를 검시하고 남긴 검안과 발사, 옥안을 모아놓은 글이다. 저자는 이 책 앞머리에 붙여놓은 짤막한 서문격의 題辭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은 獄事를 처단함에 촛불 심지를 여러 번 끊어내고 불을 밝혔다.” 다산은 또 “내가 일찍이 황해도 谷山府使로 있을 적에 감사에게 차출되어 억울한 옥사를 심리한 일이 있었고 정조 임금의 은혜를 입어 刑曹參議가 되어서는 京鄕의 여러 옥사를 밝히는 일을 맡았었다. 궁벽지고 황폐한 곳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오히려 예전의 옥사를 다루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매양 사람의 목숨이 달린 사건에 의심이 들어 명백하게 처단하지 못했다는 일을 전해 듣고서 문득 그때 일을 헤아려 논구해 본 바 있었는데 모두 합하여 약간 건수가 모였기에 이제 순서에 따라 묶고서 ‘전발무사’라 이름붙이니 모두 3권이다.”

전모를 살펴보면 제1권에는 遂安郡金日澤獄案, 松禾縣姜文行査啓跋辭, 谷山府强人金大得捕査決狀, 遂安郡崔周弁覆檢案跋辭, 이렇게 4편의 글이 실려 있다. 수안과 송화, 곡산은 모두 황해도 지역이니 그가 곡산부사로 재직할 적의 일을 상기하여 옮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안은 모두 강도나 상해, 치사로 인한 검안의 跋辭여서 몹시 중대한 사건을 처결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그의 대표적인 의학서 「麻科會通」도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제2권에는 7개, 제3권에도 6개의 옥안이 들어 있는데, 대개 2권에는 서울, 황주, 강진의 사건이 섞여 있고, 3권에는 해남, 강진, 양근 등지의 사안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제2권은 형조참의로 재직할 때 처결한 사안이고 제3권의 옥사는 그가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에 지방관의 부탁을 받고 대신한 사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합해 17개의 사안이 다루어져 있다.

이 책은 나중 「欽欽新書」를 엮을 때 함께 합하여 맨 마지막 5편의 내용에 수합되는데, 대개 그 내용이 실제 판례에 해당하는 決獄案이기에 주제별로 내용을 나누어 설명하고 맨 나중에 실제 사례를 예시 삼아 참고하여 보도록 編配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상 자료는 지난 가을 東海를 방문하였을 적에 문화원에서 제공해준 것으로 그곳은 1801년 강진에 앞서 다산이 한동안 정배되어 있었던 장기지역이 위치한 곳이다. 우리가 보는 전사본이 당시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역시 다산의 숨결이 거친 인연 깊은 고장이어서인지 이런 책이 남아 전해진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그가 젊은 시절 관직에 올라 지방의 목민관으로, 銓曹의 參議로, 혹은 궁벽한 바닷가 유배지에서 겪었던 검안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은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마제로 돌아와 「흠흠신서」 30권10책을 엮은 것은 1819년이라고 한다. 본서는 단행본으로 간행되지 않았으나, 그 내용은 「흠흠신서」 안에 수합되었기에 현대실학사에서 펴낸 역주본 「흠흠신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곁에는 이른바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각종 첨단기법들이 등장하여 빈틈없는 수사가 이루어진다고 자부한다. 또 사회의 질서와 사법체제도 예전처럼 허술하지 않아 말 그대로 사회정의가 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관심영역의 한 켠에선 아직도 소외된 사람들과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200여 년 전 다산은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통해 사회정의를 이룩하고자 유배지에서 고심에 고심을 더하였던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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