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칼럼] 임오년 새해는 여유로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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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칼럼] 임오년 새해는 여유로움과 함께
  • 승인 2003.04.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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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임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난 세월의 잘못을 되짚고,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또 다른 잘못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지난 해 동짓날에 팥죽을 먹고,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었다면 그 깨끗해진 나의 가치를 크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코엑스 근처에 차를 몰고 갈 일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고 나는 차량정지선에서 멈췄다. 그런데 왠일인가? 나보다 늦게 온 차들이 그냥 횡단보도를 지나가거나 횡단보도를 점령하기도 했다.

무려 편도 8차선이나 되는데 7대의 차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은 얼마나 불안한 마음이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은 여유로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까?

몇 년 전 모 TV에서는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양심적으로 교통법규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대형냉장고를 주는 이 프로그램 덕에 한동안 교통법규위반이 줄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렇지만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면 그런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을까.

음식점에서 음식이 빨리나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버스를 탈 때 새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화려해질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진행하면 결국 다음 교차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또 그런 행위들이 사고를 조장하는 무모한 것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도 전에는 고속도로에서 종종 속도를 즐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속을 할 때 짜릿함은 불행의 씨앗이라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게 됐다.

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제한속도를 지켜서 타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
다. 경찰순찰차를 보든, 무인카메라가 있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다.

원래 우리 민족은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는 민족이 아니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나그네가 물을 청했을 때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 주었다고 한다. 나뭇잎을 띄우는 아낙의 슬기로움이 어쩌면 나라를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문화를 더듬어보자.

밥을 할 때는 다된 밥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선 밥을 먹으려 할까? 밥에 있어서 뜸들이기는 필수조건이다. 전통차를 마실 때는 미리 찻주전자(다관), 찻잔 등을 데워서 찻물이 식는 것을 예방한다. 그리고 차가 우러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김치와 장은 담은 즉시 먹지 않고, 오랫동안 발효되기를 기다린다.

한복을 입을 땐 고름과 대님을 매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님은 그저 불편한 것이 아니라 품위와 아름다움, 건강을 담보하고, 동시에 철학이 깃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묶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 문화에 있어서 ‘여유로운 삶’은 ‘더불어 살기’와 함께 중요한 근간의 하나이다.

이렇게 우리 문화는 여유로움을 구가하는 그런 문화였다. 그런데 이제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졌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박정희정권 시절 정부가 경제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간 이후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되기에 이르렀던 탓이라 생각한다.

경제개발논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경제개발논리는 모든 일에 생산성을 갖다 댄다. 그러다보니 여유로움이 미덕이 될 수 없게 되고, ‘빨리빨리’가 오히려 최선의 삶으로 통하는 길이 되어 버렸다.

여유로운 마음은 긍정적인 자세와도 통한다. 술 반병을 놓고도 “아직도 반병이나 남았네!”하는 마음이야말로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이 아닐까? “겨우 반병 밖에 안 남았네!”하는 마음으로 살면 그 스트레스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난 횡단보도를 지날 때 신호등이 깜박거리면 되도록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마음이 급한 사람이면 틀림없이 그냥 건너겠지만 그러다 만일 차에라도 치인다면 어쩌겠는가? 다음 신호를 기다리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올 수도 있다.

임오년 한 해 우리는 우리 문화의 기본철학인 여유로운 자세를 회복하고, 우리의 삶을 윤택한 모습으로 가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민족문화운동가 김영조
(sol119@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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