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학 독점… 국민저항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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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 독점… 국민저항 불러
  • 승인 2010.09.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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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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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결이 한의계에 주는 교훈
시평- 헌재 판결이 한의계에 주는 교훈

대체의학 독점… 국민저항 불러
침뜸, 단순 요법 취급 ‘어불성설’


7월29일 헌재 판결로 인해 한의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번 판결의 여파로 대체의학 시술자를 양성화하는 입법이 적극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일부의 비판대로 한의사협회 집행부가 이 재판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물론 협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한의사 중심의 편협한 사고를 하고 있고, 이번 판결 속에 들어있는 시대적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특징은 대체의학 담론을 통해 한의학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한의학을 대체의학의 일부로 보는 것은 물론이고, 침‧뜸과 같은 한의학 고유의 치료기술을 한의사의 의학적 판단 없이도 시술될 수 있는 일종의 ‘대체요법’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침‧뜸은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치료수단의 일부일 뿐이며,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 치료수단을 운용하는 한의사들의 의학적 판단이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에서는 한의사들의 임상적 진료판단이 무시됐다. 이것은 대체의학 담론을 통해 한의학을 보는 방식이 대중 속에 상당히 확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 보편적으로 된 것은 그동안 대체의학 담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던 한의사들의 책임이 크다. 대체의학의 치료법들을 흡수해 한의학의 영역을 넓히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체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것은 결국 한국처럼 한의학이 국가의 공적 의료로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한의학도 정통의학이며, 이에 따라 한의학의 치료기술인 침‧뜸 또한 대체의학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한의계의 기본 입장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실수는 한의사들이 서구에서 대체의학 붐이 일었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간과했다는 점이다. 대체의학 운동은 1960년대 말의 뉴에이지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대체의학 운동은 생의학, 의료인들이 건강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던 상황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국민이 건강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겠다는 데서 대체의학이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의학 요법들이 인체에 대한 전일적(holistic) 관점, 몸과 마음의 통일, 인간과 자연환경에 대한 생태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한의사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침‧뜸을 한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필요 없는, 그리고 비의료인도 쉽게 시술할 수 있는 부작용이 적은 ‘요법’으로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의학의 침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호침(毫鍼)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황제내경>의 구침(九鍼)은 전통적으로 작은 수술(minor surgery)에 사용된 도구이기도 했다. 호침은 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한의사들이 침구치료에 대해 생각을 바꾸고 넓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소위 대체의학에 속하는 치료법들을 모두 한의학의 영역으로 넣어 한의사들이 독점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건강의 자기 결정권 테제는 시대적 흐름이다. 의료인이 건강에 관한 모든 권리를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국민의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국민에게 돌려줄 것은 돌려주고,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충열/ 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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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0-09-05 14:09:32
기회가 되면 다음 칼럼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의학에서 대체의학 담론에 대한 입장이 없었다는 문제, 앞으로 대체의학을 독점하겠다는 식의 주장은 먹히지 않을 거라는 지적. 그렇다면 어떤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느끼시는지

김기왕 2010-09-04 21:16:57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건강의 자기 결정권. 제 생각에.. 의료인들은 자신이 '전문가'임을 내세워 의료 서비스의 선택권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습니다. 한의사들은 부디 의사 따라하기 그만 하고, 이제는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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