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16] 김은진 서울 동서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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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16] 김은진 서울 동서한의원장
  • 승인 2003.04.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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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색맹치료에 매달려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동서한의원을 찾아가면 문 앞에 ‘색맹 무료 상담’이란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의원에서 왠 색맹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동서한의원 김은진(70·사진) 원장은 25년 동안 색맹을 치료하며 완치된 환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 치료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시작

10년 전쯤 한의학으로 색맹을 고칠 수 있다는 방송이 나간 다음 날 대전에 사는 한 40대 여성이 퉁퉁 부은 눈으로 김은진 원장을 찾아왔다.

외아들의 색맹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밤새 울다가 서울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한 여성은 치료 중에도 색맹치료가 원로인 김 원장 세대에서 끝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감으로 내내 걱정을 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색맹이 모계 열성유전이라는 유전방식에 따라 여성들이 갖는 원죄의식이 있다며 그래서 모든 치료가 끝나고 자녀가 색각표를 정확하게 읽어내면 치료자 본인보다도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들이 오히려 감격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은진 원장이 어린 시절부터 한의사를 꿈꿔왔던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쭈욱 ‘수학박사’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만큼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이라며 “한가지 원리를 풀어내느라 밤새기 일쑤”였다고. 색맹 치료에 확신을 갖고 치료에 매달리게 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장손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54년 경희대 한의대(당시 서울한의과대)에 입학해 58년 졸업했지만 졸업 후엔 바로 군복무를 하고 제대 후에는 보훈처에서 공무원으로 7년 간 근무하기도 했다.

7년의 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현재 동서한의원에서 먼저 색맹치료를 시도하고 있었던 한의대 동기생으로부터 한의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그는 이 분야 치료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보였고 확신으로 시작된 색맹 치료는 현재의 이론과 임상노하우를 정립하게 된 것이다.

◆ 색맹은 음치와 같은 맥락

색맹이 100% 치료가능 하다는 김은진 원장의 주장에는 항상 ‘정말 색맹이 치료가 가능하냐’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불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선천성 유전이라는 유전 법칙의 결과만을 중시해 그렇게 교육받은 백과사전적 지식 때문”이라며 “색맹이란 색을 전혀 볼 수 없는 장님이라는 뜻의 소경 盲인데 이는 일제하의 잔재를 시정치 않고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의학 용어이기 때문에 色癡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이런 이론들을 88년도 제5차, 95 년도 제8차 국제 동양의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바 있고 98년에는 성도 중의약대학 40주년 기념식에 색맹 치료에 관한 발표를 하고 객좌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색맹을 ‘음치’에 비유했다. 음악학적으로 음정과 박자를 잘 구사하지 못 하는 사람을 音癡라고 한다면 미술학적으로 여러 색상의 배열 시에 혼돈이 와서 색각 이상을 나타내는 사람은 색치(色癡)라는 것이다. 따라서 훈련과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면 색각 교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 침 치료와 색채 감별 훈련 병행

치료는 눈 주변 및 머리의 주요 경혈 등에 침을 찌른 채, 20~30분간 색채감별 훈련이나 뒤섞인 색종이 가운데 같은 색깔을 찾아내는 일을 반복하거나 크레파스를 이용해 그림 복사하기 등 여러 가지 훈련을 실시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중풍환자가 침과 물리치료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이렇게 3개월을 치료하면 색감이 터지게 되고 한번 터진 기능은 영원하다는 게 김은진 원장의 임상경험에서 나온 결과이다.

그는 “색맹치료가 안 된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이지 해보고 안 된다는 사람은 하나도 못 봤다”며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가 치료의 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강조했다. 본인이 특별한 임상실력이나 노하우를 가진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안 된다고 하는 분야를 믿고 시작했고 그 만큼 환자가 따라와 주었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거듭 언급했다.

예전에는 운전면허 시험 등 각종 시험 등에 대비해 한의원을 내원하는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부모가 초·중생 자녀를 데리고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색맹환자 치료에 대한 시장성은 아주 밝다고 덧붙였다.

◆ 한의사, 마음의 공부가 우선

이 정도 임상의 축적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요즘 개원가에 불고 있는 전문화 바람에 편승해 ‘색맹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특화할 만도 하지만 김은진 원장은 본인의 한의원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 조차 너무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전체를 보는 것으로 병명이란 것도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없고, 환자의 고통과도 전혀 별 의미가 없으며, 학자 또는 醫者間에 사용하는 용어로 다만 수증치료를 해야할 뿐이라며 한의사가 특정 한가지만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것은 이치 상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2000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주 쉬운 한방강좌’란 주제로 1년간(50회) 내일신문에 연재하기도 했으며 AKOM 통신에 후배들에게 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은진 원장은 AKOM 통신에 글을 올리고 부터 후배들에게 메일을 종종 받지만 대부분 병명을 위주로 한 치료방법을 물어보는 것이라 못마땅하다며 자신은 후배 한의사에게 백과사전식 지식이 아니라 원리·이치와 지혜를 깨우쳐주기 위해 통신에 들어갔던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 원장은 한의사로서 자존심을 유지하려면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며 그 노력은 책 공부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공부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술은 물려줄 수 있으나 의도는 전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색맹 치료의 학문·임상적 노하우를 계승해 한의학의 색맹치료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며 후배 한의사의 관심을 촉구했다.

2남 1녀를 두고 있는 김은진 원장은 장남 재성 씨가 현재 LA에서 한의원을 개원, 대를 잇고 있다.

양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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