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49)- <厚生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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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49)- <厚生錄>①
  • 승인 2010.04.2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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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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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族의 양생, 약초 가꾸기와 구황벽곡

고의서 산책(449)- <厚生錄>①

 

 


士族의 양생, 약초 가꾸기와 구황벽곡 

이 책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오직 知守齋 兪拓基(1691∼1767)의 <知守齋集>(권15)에 ‘厚生錄序’가 남아있는데, 유척기는 24세인 1714년에 문과에 입격하여 宦路에 들어선 이후, 1744년(영조20) 54세의 나이로 內醫院 都提調가 되었으나 30여 차례 사직소를 올리고 모친의 봉양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문집에는 위의 서문과 함께 약원에 입직했던 이들과의 계병에 쓴 서문인 ‘藥院契屛序’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 기간 내의원에 수장 직을 맡아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저술 시기가 명기되어 있지 않은 이 책의 저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서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날마다 일하지 않고 곡식만 축낸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유척기가 연로하여 관직에서 致仕하고 耆老所에 들어가는 시점, 즉 그의 나이 70세인 1760년(영조36)에서 사망 직전인 1767년(영조43)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하권 1책만 남아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간 저자 미상인 채로 남았는데, 최근 들어 박문열의 연구에 의해 이 책의 저자가 辛敦復(1692∼1779)임이 밝혀졌다. 신돈복은 자가 仲厚이고 호가 鶴山 혹은 景軒으로 불렸으며, 묘가 개성에 있다고 전한다.

하권 1책 필사본 전수… 辛敦復 저서로 규명
海東傳道錄記文 보아 저자 도가적 이상 추구


또한 이 책의 사본이 개성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쪽 출신이거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세거했던 집안으로 보인다. 그는 이 책 말고도 <鶴山閑言>과 <左溪裒譚> 같은 책을 지었으며, 훗날 姜獻奎(1797∼1860)가 1857년에 펴낸 도가 계열의 內丹 養生書인 <參同契演說>에 澤堂 李植의 글과 함께 그가 지은 ‘海東傳道錄記文’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도가적 이상을 꿈꿨던 인물로 보인다.

이 책은 그간 <東國厚生錄> 혹은 <東國厚生新錄>이라는 다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간인된 사실이 없다. 한글본 <후생록>이 전존하고 있지만 이들 한글본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의약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하니 동명이종서로 보인다.

인용 문헌도 매우 다양한데, <대학>, <논어>, <太史公>, <元史> 등 經史類와 陸象山, 王陽明 등 諸家書를 비롯하여 <農桑通訣>, <氾勝之書>, <濟民要術>과 같은 농서류가 들어 있다. 또한 <仙經>, <仙方>, <福壽全書>, <壽養書> 등 도가 양생서가 다수 보인다. 의약서로는 <救荒書>, <本草>, <醫方>, <厚生訓纂> 등이 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의방유취> 편찬 시에 도입된 朱權의 <神隱>이 134회에 걸쳐 대량 인용된 점이다.

내용 가운데 玄扈 先生이라고 출전 표기가 된 곳은 호가 현호인 명나라 徐光啓(1562∼1633)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가 펴낸 <農政全書>를 원용한 부분으로 보인다. 하권만 남아있어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 책 안에는 전체 58종에 달하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어 있어 당대 필요 지식을 충당하기 위하여 폭 넓게 망라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번 봄에는 여러 가지 화려한 화초와 정원을 꾸밀 식목도 좋지만 집안에 약초분 하나 장만해 꽃도 완상하고 자라는 생태도 관찰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는 모습에도 각자 개성이 있어 藥性이 다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안상우/ 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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