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의정리학연구회 학생캠프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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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동의정리학연구회 학생캠프 참관기
  • 승인 2010.02.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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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기자

박진우 기자

dalgigi@http://


“한의학 전체를 꿰는 ‘관’을 세우는 과정”
“한의학 전체를 꿰는 ‘관’을 세우는 과정”
체험하고 이해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라 주문

(재)동의정리학연구회 학생캠프 참관기 

#. 밤 8시. 부뚜막
“잘 젓고 있냐?” 김명동 상지대 한의대 교수가 실습 중인 학생들에게 시원하게 말을 건냈다. 옛 부엌을 연상시키는 탕제실은 참나무 장작불 열기와 그윽한 약재 향이 가득했다.
“맛보실래요?” 한 학생이 주걱을 빼든다. 흑단처럼 검은 것이 엿처럼 끈적끈적하게 따라 올라온다. 한 점 찍어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아주 향기로웠다.
“쌍화고입니다. 약물을 중탕해서 오랜 시간 달이면 ‘엿(고)’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양이 적어 위에 부담 없으면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지요. 학생들 실습용으로 쓰려고 50재를 캠프 5일 전부터 미리 달이고 있는 겁니다. 어젯밤 캠프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조를 짜 밤새 불침번을 서며 저었지요.”
이처럼 ‘고’ 형태로 약재를 사용하는 것은 스승인 故 太無眞 박해복(1923~1999) 선생의 가르침이라 했다. 선생은 仁旺한의원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88년)과 석류장(94년)을 받은 뒤 보다 체계적인 공익활동을 위해 1995년 8월 재단법인 ‘동의정리학연구회’를 설립했다. 김 교수는 선생의 강의자료와 가르침을 묶어 2009년 3월 <東醫定理學>을 출간했다. 이 의서에는 선생의 ‘정리학’ 이론과 200가지 이상의 처방비법이 담겨있다.

#. 부뚜막 30분 전. 원주시 백의초당 앞
“먼 길 오셨습니다.” 푸근한 인상의 김 교수가 활짝 웃으며 맞아줬다. (재)동의정리학회 이사장이자 상지대학교 산학협력단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2004년부터 매주 화요일 전국에서 모여든 ‘활생초 모임’ 학생들에게 <東醫定理學>을 가르치고 있다.
방학캠프는 이 학생들이 주축이 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2010년 캠프에는 세명대, 원광대, 대전대, 상지대 학생 25명이 참가했다.

도갱물에 잰 불고기 나온 야식 겸 체험학습
원광대 상지대 등 25명 2박 3일 캠프 참가
매주 화요일 활생초모임 <東醫定理學> 공부

#. 밤 10시 30분. 휴식시간
2시간 동안 진행된 견관절, 주관절, 완관절, 수지관절 교정실습 후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제대 후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이동규(32.세명대 한의대 본과3)씨. “동의정리학 캠프는 한의학 전체를 꿰는 ‘관’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들과 공부를 할수록 한의학에 대한 자긍심과 희망이 느껴집니다.”
앳돼 보이는 유학균(21.대전대 한의대 예과2)씨. “학교 수업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가 좋아요. 실습할 때도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꼼꼼히 지도해 주시고요.”
같은 조 동료들을 잘 챙겨주는 여학생 강민수(23.세명대 한의대 본과2)씨. “3번째예요. ‘갇혀있지 마라. 외우려고만 하지 말고 몸으로 체험하며 이해하라. 동시대 사람들의 식문화를 관찰하고 분석하라’는 교수님 말씀, 혼자 깊이 생각할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 밤 11시. 다시 부뚜막
들통에서 채로 거른 새까만 콩알갱이가 장작불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먹어봐.” “냄새는 괜찮은 것 같은데….” “맛있어.” 뒤늦게 들어온 학생이 아무 두려움 없이 한 알을 입 속에 털어넣는다. “우이 씨~.” 쓰긴 쓴가 보다.
소의 쓸개즙을 먹인 콩, 일명 우담콩이다. 쓸개즙과 콩을 2:1 비율로 섞어 중탕으로 12시간 가량 달인다. 바싹 건조시킨 뒤 3번 정도 반복한다. 불은 역시 장작불이 최고란다.
“예전과 달리 담즙 분비에 이상이 생기거나 담석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부쩍 늘었어. 스트레스로 인해 간의 소설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이지. 부족한 담즙을 외부에서 공급할 목적으로 민간에서 사용해온 게 바로 우담콩이야.”

#. 밤 11시 반. 강의실
지글지글~ 달콤한 불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출출하던 차라 덥석 한 점 넣었다. 질긴 기운 없이 살살 녹았다. ‘평소 맛이 아닌데….’
“벼대롱을 달인 물에 잰 불고기입니다. 할머니들은 예로부터 이 도갱물을 소화제로 썼지요.”
김 교수는 질 좋은 도갱물을 얻으려고 직접 농사를 지었다. 농약은 물론 안 썼다. 영양분이 벼대롱에 조금이라도 더 남도록 알곡이 여물기 전에 거둬 말렸다.
“대롱은 빨대처럼 물이 통과합니다. 막힌 것을 뚫는 기능이 있지요. 그 기운 때문에 소화제가 되는 겁니다. 이 물에 고기를 재어 먹으면 육질도 부드러워지고 소화도 잘 되니 이게 바로 건강식이지요.”

#. 밤 12시 반. 강의실 밖
비가 제법 굵어졌다. 안개도 밤처럼 짙어졌다. 잠시 바람을 쐰 후 강의실 문을 여는데 김명동 교수의 시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지 개원하는 게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한의학은 넓고 깊어요. 사람을 이롭게 하는데 기여할 영역이 무궁무진합니다. 잠시라도 공부를 쉬면 안 돼요. 아시겠죠?”

원주=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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