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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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17)
  • 승인 2010.02.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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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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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氣 아닌 濁氣 올라오면 여드름 발생
한의학 바다에서 살아남기(17)

淸氣 아닌 濁氣 올라오면 여드름 발생
여드름 환자 대부분 구취 동반

올해 새로 바뀐 상병명 체계 때문에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중인데, 이 불편함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상병명을 쓰는데 대해서 논란을 더할 생각은 없지만 바로 치료와 연결할 수 있는 한방 병명들이 없어진 불편함은 여러분께서 함께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출발과 체계가 전혀 다른 양의학 쪽의 병명을 보니 한편으로 재미난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 대표적인 것이 ‘상세 불명의’로 시작하는 병명과 ‘기타의’부터 시작하는 이름들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비슷한 것들을 나누고 또 나누다 보니 실체는 있는데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았나 보다.

이제껏 우리는 대체로 부위에 대한 상세한 구별보다는 원인에 따라서 병명을 분류해 왔는데 양방 쪽의 병명은 부위에 대해서도 손, 아래 팔, 어깨, 무릎, 발목, 심지어 정확하지 않은 부위라는 뜻의 분류까지 하고 있는걸 보고 그 동네의 사정을 참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좌우의 손목이나 발목은 똑같이 취급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세세하게 나눈다면 왼쪽과 오른쪽도 나눠서 상병명을 붙였음직도 한데 말이다. 정밀하게 분류한 것 같아도 정작 해야만 할 구별, 즉 좌우에 대한 구별은 일고의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을 세포 단위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서 분자구조와 유전자까지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세하게 분석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먼저 구별해야 할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여드름 치료의 근본은 소화를 잘 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성장하면서 흔히 생기는 여드름은 속설에 결혼하면 낫는다고 할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도가 아주 심해서 외모에 콤플렉스가 생길 정도인 사람도 많다.

여드름의 주 원인은 위로 올라와야 할 청기(淸氣)가 올라오지 않고 반대로 탁기(濁氣)가 올라오기 때문에 생긴다. 여드름이 잘 낫지 않고 고생하는 사람은 대부분 구취를 동반한다. 음식물을 섭취한 다음에 중초에서 정미가 분리되어 영기와 위기가 생성되고 나머지 조박의 탁기가 잘 내려가는 정상적인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 청기를 올리는 방법은 반대로 탁기가 잘 내려가게 하면 된다. 여드름 치료의 근본은 소화를 잘 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여드름이 치료될 때도 양 쪽이 똑 같은 속도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왼쪽 또는 오른쪽의 어느 한 쪽의 호전반응이 차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실하고 허한 좌우를 타고나지 않았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영위지기가 실한 쪽은 나을 때도 빨리 낫게 된다.

구안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안와사는 치료하지 않아도 1달 내에 좋아지는 경우가 제법 있지만 어떤 구안와사는 치료에 조금 반응하는 듯하다 더 이상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구안와사에 여러 번 걸린 환자를 보면 좌우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다. 타고난 영위지기가 허한 쪽에 탈이 날 때 환자는 호전이 아주 느리다.

비교적 가벼운 증상인 발목이 삔 경우도 왼쪽이 삐었을 때와 오른쪽이 삐었을 때의 호전 속도가 다르다. 몇 년 전에 삔 발목이 아직도 몸 컨디션에 따라 아팠다 말았다 한다는 환자는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선천적 좌우 차이로 질병 치료법이 다르다고 <황제내경>에 명시돼”

인체에서 가장 비교하기 쉽게 다른 좌우라고 하는 차이가 건강의 유지와 질병의 진단, 치료에까지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황제내경>에서 선천적인 좌우의 차이가 있어서 질병의 양상과 치료방법이 다르다고 명시한 내용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 까지는 25세기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역시 좌우와 관련한 최근의 임상례를 소개한다. 이 임상례도 올해 초 종이차트를 치우고 새로 바뀐 한의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필자의 실수와 관련이 있다. 1월 초에 갑자기 생긴 우 상지의 거상장애와 무력감, 약간의 감각 이상을 주 증상으로 온 환자가 있었다. 40 전후의 남자환자는 작년에도 왔는데 종이차트를 찾아보지 않고 왼쪽에 있는 대저(大杼)혈에 침을 놓았다.

최근에 고혈압도 생겼다고 해서 침을 놓고 난 다음에 혈압을 재보니 120/90 정도로 나왔다. 침을 맞자마자 오른쪽 팔을 올리는 힘도 좀 더 들어간다고 한다. 환자에게 이것은 <동의보감>에는 풍비(風痹)라는 병명으로 기재돼 있으며 중풍의 일종으로 크게는 풍병(風病)에 속하니 조심하고 침 치료를 하면서 한약 복용도 필요함을 말했다. 그런데 그 환자가 며칠만에 와서는 MRI를 찍어봤는데 작은 경색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면서 내 말대로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지난번에 조금 효과가 있던 생각에 몇 차례 더 왼쪽의 대저혈에 침 치료를 했는데 이상하게 침 효과가 확 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었다. 태양경에 위기가 있는 시간에도 맞춰보고 보법(補法) 전 단계를 열심히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는 조금씩 좋아진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벌써 다 나아야 할 증상인데 하고 고민이 됐다. 혈압도 140/100 정도가 계속된다.

그러다 며칠 후 작년의 종이차트를 보니까 작년의 손저림 증상을 오른쪽에 침을 놔서 치료한 게 아닌가. 아차, 싶어서 그 다음에 왔을 때 오른쪽 대저혈에 침 치료를 하니 환자가 확실히 손에 힘이 들어간다고 한다. 혈압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뜻 생각하기에 명확한 진단명만 있을 줄 알았던 양방 상병명에 빠지지 않는 상세 불명의 상병명에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내경>의 저자가 본다면 지금의 침법 역시 상세 불명의 침법은 아닐까.

대표집필= 이정우 동의형상의학회 반룡수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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