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40)- <山家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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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40)- <山家要錄>
  • 승인 2009.12.1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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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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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 산책(440)- <山家要錄>

 

 


다재다능 御醫 全循義의 食治論

겨울철 채소‧ 화초 재배법 서구보다 훨씬 앞서
양조 ‧ 造醬‧ 治醬 등 230여 종류 조리법 수록

수년 전에 발굴된 책이지만 아직 전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책으로 우리에겐 세종 시대의 名醫 全循義의 遺作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현전본 역시 앞뒤가 상당히 마모된 상태여서 전체적인 체제를 자세히 밝히기는 어려우나 대략 전반부는 농업기술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중반에는 각종 조리법과 음식치료방, 그리고 후반부는 문집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 책에 담겨진 내용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것으로 ‘冬節養菜’ 즉 겨울철 온실 재배를 통한 채소와 화초 재배법은 서구의 것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앞쪽에는 내용이 다소 결실되어 있지만 대략 농업경제와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띠는 養蠶에 관한 내용이 배치되어 있고, 이어 배, 능금, 밤, 대추, 복숭아 등 유실수 과일 재배법 15가지, 대나무, 소나무, 잣나무, 닥나무 등 나무 기르기 10가지, 오이, 수박, 동아, 박, 토란, 아욱, 가지, 순무 등 채소 가꾸기 18가지, 지초, 쪽, 치자, 지황, 국화, 양귀비 등 염료 및 약초 6종, 그리고 마소, 양, 돼지, 닭, 거위와 오리, 물고기, 벌을 키우는 법이 수록되어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책에 수록된 종류는 대개 비름나물처럼 너무 흔하여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과 우리 땅에 나지 않는 것은 삭제하여 아예 싣지 않았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이러한 원칙은 <향약집성방>의 향약 처방의 선별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면모가 있다. ‘易得之物, 已驗之術’을 모토로 진행된 향약 진흥정책은 바로 의약자원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철저히 경험에 기반을 두어 지식을 자기화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의 내용이 이른바 食治에 관련한 내용으로 酒方이라 이름 붙인 양조법으로 56종에 이르는 항목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그 외 장류에 대한 것으로 豉와 메주 띠우는 법, 合醬法 등 12가지의 造醬法과 4가지의 治醬法(장맛 고치는 법) 등 19항목이 기록되어 있다. 또 식초 17종, 김치 38종, 과일 및 채소의 저장법 17종, 어육 10종, 죽 6종, 떡 10종, 국수 6종, 만두 2종, 수제비 그리고 과자류 10종류, 좌반 4종, 식혜 7종, 두부 1종, 탕 7종, 기타 계란, 닭, 소머리 삶는 법 등 총 230여 종류에 달하는 방대한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김치류 생선식혜 죽순 등 전통식 복원 참고서
미천한 신분이지만 치료기술로 資憲大夫 올라

특별히 이 책에는 汁菹, 瓜菹, 茄子菹, 菁沈菜, 凍沈, 蘿薄, 生蔥沈菜 등 오늘날 우리가 먹는 김치의 원형으로 보이는 많은 분량의 김치 류 문헌기록이 보여 흥미를 끌고 있다. 김치를 비롯한 저장발효 음식에 해당하는 이들 전통식은 무려 38종에 달하는데, 현전 기록들이 대부분 16세기 이후의 것들이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이밖에도 <산가요록>에는 오늘날 잘 전승되고 있지 않는 생선식혜(魚醯)를 비롯하여 돼지껍질, 도라지, 죽순, 꿩고기 식혜 등이 수록되어 있어 전통음식을 복원하는데 참고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관용적으로 쓰이는 계량단위가 표기되어 있는데, 예컨대 사발(沙鉢, 鉢), 병(甁), 동이(東海), 복자(鐥) 등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들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막연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양주방의 첫머리에는 계량법을 환산하여 적어 놓았다. 즉 2홉은 1잔, 2잔은 1爵, 2되가 1복자, 3복자는 1병, 5복자가 1동이…… 등이다. 이러한 탁량법은 官에서 시행하여 사용해 오던 척관법과는 별도로 민간에서 통용하던 방식으로 보이며, 간혹 전통 한국의학 문헌에도 드물지 않게 용례가 나타나고 있어 한국의학 고유의 특성을 표현하는 요소로 간주할 수 있다.

전순의는 세종 대부터 세조 대에 이르기까지 누대에 걸쳐 의관으로서는 최고의 지위와 영화를 누린 인물로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는 아마도 세종 대에는 미천한 신분이지만 뛰어난 치료기술을 지녀 일약 임금의 총애를 얻었으며, 세조 대에는 癸酉靖難에 참가한 공로로 佐翼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어 上護軍, 僉知中樞院事를 거쳐 종2품계인 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수년 전 그가 전라도 진안 출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세간의 이목을 끈 적이 있으나 족보에 동명의 전순의라는 인물이 존재하는 사실만 후손에 의해 확인되었을 뿐 의관 전순의인지는 명백하게 입증되지 못한 채 지내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이러한 인생 역정 이외에도 의학자로서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세종대에 대단위 국책사업으로 진행한 <醫方類聚>(1445)편찬 사업에 당대 최고의 명의로 알려진 盧重禮와 함께 경험 많은 의관으로서 참여하였다. 또한 金義孫과 함께 <鍼灸擇日編集>(1447)을 지었고 특별히 우리나라 최초의 식치 전문서인 <食療纂要>를 지어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항간에는 그가 단순한 의원이기보다는 食醫 출신으로 내의를 지낸 인물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으며, 대단위 편찬사업에 책임자로 활약하고 또한 침구술에도 능한 것으로 보아 내시 출신으로 여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이 책의 담겨진 내용 가운데 의학적으로 곱씹어 볼만한 기록이나 의약과 관련이 깊은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사례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091211-기획-고의서산책-산가요록-전순의-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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