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료 담론] 문제 해결의 핵심고리는 ‘치료율’
상태바
[임상의료 담론] 문제 해결의 핵심고리는 ‘치료율’
  • 승인 2009.06.12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전통 이론과 접근방법에서 경쟁력 나와

한의학미래포럼은 5월29일 ‘한의계, 지난 10년의 자화상, 그리고 미래비전 - 임상의료분야’를 주제로 임상의료분야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본지는 포럼의 연장선상에서 한의계내 담론형성에 일조하고자 각계 인사들의 글을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윤영주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의견을 싣는다. <편집자 주>


한의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고, 문제들의 목록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가지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고리를 잡았을 때, 얼키고 설킨 나머지 문제들도 해결의 가닥을 잡아갈 수 있는 핵심고리를 찾아내어 거기에 집중해야만 한다. 무엇이 핵심고리일까?
필자는 그것이 ‘치료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의학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이며 철학이기도 하지만, ‘의학’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치료(진단에서 예방과 양생까지 포함한 광의의 개념임)에서 효과가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한의학의 핵심, 치료에서 구현돼야”

‘치료율을 높이는 것’은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전체 한의사들의 치료율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이 한 가지이고, 이미 존재하고 경험하는 치료효과를 ‘객관적인 근거’로 만들어내어 의료제도 안에서 입지를 넓혀 나가는 것이 또 하나이다. 양자는 현재 상황에서 똑같은 정도로 중요하며,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제이기도 하다.
한의대 교육과정 개편이나 각종 진료지침 표준화도 실제 임상에서 치료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표준화를 위한 표준화, 또 하나의 내용 없는 형식적 제도화에 머물 뿐이다.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근거 없이는 한방 산업화도 한의학 홍보도 속빈 강정, 모래위에 쌓은 성이 될 수 있다. 국가 공공의료나 보험제도 진입은 더욱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어학 실력을 기르기 위한 영어 강의 이전에, 영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한의학의 핵심을 체득하고 치료에서 구현해야만 한다.

치료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현대 과학기술, 기기, 대체요법들도 얼마든지 한의학에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한의학 자체에 철저한 것’에서 나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융합연구에서도 한의학이 기여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은 전통적 이론과 접근방법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이다. 근거를 만들어내는 연구방법론도 한의학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수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한의학 살려야 개인도 조직도 산다

한의사 개개인이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집단적 노력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양한 임상연구들로 모범적인 치료 사례가 검증되고 치료지침으로 일반화되어 그것이 다시 교육에 수용, 도입되는 것이 치료의 질을 높이고 근거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런 일은 누가 해야 할까? 아무리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라도 나서서 할 주체가 없다면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꼴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은 한의대, 한의학회, 한의학연구원, 한의사협회가 해야 할 일이며, 그런 조직들의 존재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들 조직에 몸담고 있는 많은 분들은 다른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서로 비판하며, 개원의들의 참여와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 탓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계속 남의 탓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 이런 현실이 계속될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 개별 조직의 생존을 위해 수행되는 일들이 정작 한의학 발전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일과는 무관할 때가 많아 보인다.
한의학을 내걸었지만 ‘실적을 위한 연구’, ‘개인의 입지를 위한 활동’, ‘조직의 기득권을 위한 정책’ 등의 비판들이 나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한의학이 공격받고 쇠퇴하더라도 자신의 기득권은 유지되리라고 믿는다면 계속 그런 관성대로 행동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의학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한의’ 명패를 단 개인이나 조직이 과연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 한의학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개인도 조직도 장기적으로 생존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의계의 대표주자 역할을 종종 하시는 분이 “한의학에는 희망이 없다”고 하시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부, 명예, 사회적 지위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의학으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분의 발언이었기에 분노의 감정마저 들었다. 진정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면, 더 이상 한의계의 대표성을 띤 자리에 나서서는 안 되며 차라리 침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나로부터 시작하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한의학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사람들, 한의학의 미래를 자신의 미래와 일치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전통 한의학의 이론과 방법으로 난치병 치료에 도전하고 있는 여러 학회들, 경영능력이 아니라 치료 실력으로 승부하고자 노력하는 한의사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한의학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는 다양한 외부 연구자들과 연계 협력하는 네트워크, 소모임들이 활성화될 때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조직이 타성을 깨고 분발하게 하는 자극도 될 것이다.

핵심고리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각자가 처한 위치와 할 수 있는 일들도 다르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과 냉소주의, 행동하지 않는 비판, 작은 차이로 인한 분열이 얼마나 큰 역사의 후퇴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얼마 전 우리 모두 실감할 수 있지 않았던가!
남의 탓은 이제 그만 두자. 각자 생각하는 핵심고리 해결을 위해 나로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간다면 “한의학에는 희망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