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06] 聾啞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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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06] 聾啞集
  • 승인 2009.02.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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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세상을 치료한 土亭의 身數秘訣

오늘은 색다른 책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책머리에는 1624년에 쓴 李運夏의 서문이 붙어 있는데, 서문의 첫 줄부터 이 책의 원작자는 토정선생이라고 밝혀져 있다.
토정선생이라면 조선 중기의 학자 李之菡(1517∼1578)을 말하지만 대개 일반인들의 뇌리에는 새해 신년운수를 점쳐보는 ‘토정비결’의 작자요 입산수도한 도사쯤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의약을 생업으로 하진 않았지만 의학과 卜筮에 밝았고 도가의 양생법에 정통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당시 여러 차례에 걸친 혹심한 士禍로 뜻있는 학자들이 官路를 버리고 草野에 은거하여 학문과 저술로 세월을 보내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處士 혹은 居士, 遺逸, 山林이라고 불리었는데 대표적인 학자로 花潭 徐敬德을 꼽을 수 있다. 토정은 바로 서화담에게 직접 전수받은 제자이다.

이 시기 은거학자들은 정치적 야망을 버렸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학문적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조선 건국 초기부터 진작한 기술학 진흥책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토정이 천문, 지리, 의약, 복서에 통달하였다거나 10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도 병이 나지 않았다고 전하는 이야기들은 그가 도가의 辟穀을 비롯한 양생법에 능했음을 말해준다.

한편 토정이 간질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동패락송』이라는 야담집에 전한다. 어느 날 율곡을 방문한 그는 흙으로 구워 만든 갓을 머리에 쓴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 연유를 물은 즉, 세상의 온갖 병 가운데 간질병이 가장 고약했는데, 일부러 벽 틈에 누워 百會穴에만 바람을 쏘였더니 석달만에 간질병이 생겼다는 것이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흙으로 만든 갓을 쓰고 절에 가서 3달 동안 면벽수도를 한 끝에 나을 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병을 만들어 의약을 시험해 보는 실천적인 구도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전문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저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숙종조에 토정의 玄孫인 이정익이 『土亭遺稿』를 간행할 때 이런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고 『동국세시기』를 비롯한 풍속지에 새해 풍속으로 ‘토정비결’로 한해의 운수를 점친다는 언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이 비결은 19세기경에 만들어져 이름만을 가탁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토정 이지함이 서화담에게 주역을 배워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 그의 변혁 의지가 민중들의 심중에 담겨져 전해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수록 내용을 살펴보면 策數起例에는 太歲와 月建을 정하는 법과 作卦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고 八門定例에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諸葛亮이 八陣圖에서 썼다는 8문 즉, 休門(경기), 生門(강원), 傷門(전라), 杜門(황해), 景門(경상), 死門(평안), 驚門(함경), 開門(충청)에 대해 각각 설명하고 있다. 또 策數定局, 先天數, 後天數, 起時例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서문에는 또 보허문진묘대법에서 요점을 뽑아 1018국으로 통합하였다가 초학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29국으로 간편하게 줄여서 만들었다는 경위가 밝혀져 있다. 아울러 積慶種德하여 이 귀중한 寶訣(重寶)을 얻었다 할지라도 자식이나 형제에게 함부로 전하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을 지닌 자를 가려 전수하라 당부했으니, 서명의 ‘聾啞’라 이름붙인 것은 바로 이런 뜻이라고 하였다.

본문 중에 “이 법은 화담선생이 東國의 국운을 수리로 풀어 문인인 토정선생에게 전한 것인데, 크게는 나라의 재앙과 吉祥에서부터 작게는 한 해의 豊凶 및 物價, 貴賤, 擇地의 길흉에 이르기 까지 두루 다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분석에 따르면 운수풀이의 70% 이상이 행운의 괘라고 한다. 또 불운하다 해도 ‘조심하면 길할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을 가해 병든 세상의 민중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던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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