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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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9)
  • 승인 2008.12.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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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바람과 물이 흐르는 山高水長

구르쵸(4400m), 라룽라(4990m), 탕라(5050m) 3고개를 넘으면 히말라야산맥도 넘는 것이 된다. 너무 높고 메마른 죽은 땅(?)에서 낮은 곳으로 가면 바람과 물이 흐르는 山高水長이란 山水畵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산은 높고 물은 멀리 흐른다. 老子만큼 물을 잘 묘사한 성인도 없었다. 流水不爭先,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다. 그리고 둥글면 둥근 대로, 각이 지면 각이 진 대로 만나는 모든 형상을 감싸고 순종한다. ‘柔能制剛 弱能勝强’이란 兵法처럼 부드럽고 약하지만 굳셈과 강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물이다. 물을 보면서 나를 낮추는 겸손을 배운다.

내려갈수록 계곡은 천길 낭떠러지, 장무로 향하는 도로는 가파른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길이다. 절벽이 너무 높고 계곡은 깊어서 추락하면 그대로 水葬이 되었겠다. 이 길을 건설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교했을까? 고원을 넘으니 이렇게 먼저 기후와 풍경이 달라진다. 구름이 회색빛을 더하더니 빗방울이 차츰 강해지기 시작한다.

비상금과 카메라를 비닐로 싸서 담고 방풍의를 입었다. 저체온증이 못 오도록 지체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급커브는 미리 속도를 줄이고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게 Lean out(자전거는 안쪽, 몸은 바깥 쪽)자세를 취하면서 만약의 경우 Lay down(옆으로 넘어지면서 하는 次善의 제동법)을 할 준비를 하고 달렸다. 빗물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고 시야는 부옇다. 뒤따라오는 대원들이 걱정되지만 인샬라!

이 비는 우리가 티베트 고원을 벗어난 세례의식이었다. 고원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세찬 비가 내려 메마른 감성과 영혼을 적셔주고 씻어준다. 흙탕물이 넘치는 비포장 다운힐은 거칠지만 강하고 Sadistic한 정복감을 안겨준다.

티베트와 히말라야 지역에는 一妻多夫라는 기상천외한 결혼 풍속이 있다. 이 제도에 대해서 남자와 여자 누가 환호할까?^^
이 전통은 티베트, 라다크, 히말라야 인근에 사는 세르파족, 타망족의 풍속에도 남아있다. 嬰女살해나 약탈 등으로 여자인구가 적거나 유목, 장사, 카라반 등으로 남자가 자주 집을 비우는 종족인 경우에 一妻多夫가 적용될 수 있다.

一夫一妻는 한 번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므로 人倫之大事라 한다. 서로 相生하는 결혼은 건강해지고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활력이 생기며 양가 가족관계도 좋아진다. 불편한 相克인 결혼은 건강도 악화되고 일도 안 풀리며 가족관계도 견원지간이 된 경우가 많다. 잘 맞는 결혼은 천국이지만 안 맞는 결혼은 지옥이라는 속담도 같은 말이다. 그래서 이런 불행을 막으려고 사주궁합을 보고, 집안을 보며, 경험 많은 어른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一夫一妻혼인은 위험과 운명적인 부분이 크다. 一夫一妻가 Private(私的)측면이라면, 一妻多夫나 一夫多妻는 Public(公的)한 측면이 강하다. 높은 산악지역은 형제혼이고, 네팔의 낮은 지역은 자매혼이다. 이렇게 본능에 관련된 결혼 역시 사회, 환경, 경제, 권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적자생존 능력은 새삼 놀라울 뿐이다.

티베트의 一妻에 대한 남편“들”은 반드시 兄弟여야 한다. 시동생, 시아주버니, 남편이 동격이 된다. 형제혼이지만 유전학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근친상간은 절대 아니다. 에스키모들이 손님에게 아내와 동침을 허락하는 것도 근친상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이 형제혼은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남자의 자리를 형제들이 돌아가며 가정을 지켜주기 때문에 밖에서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재산이 흩어지지 않고 一妻를 중심으로 모여서 경제력을 키울 수 있다.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一妻多夫는 자연스러운 인구조절이 가능했다. 결혼이란 초월할 수 없는 굴레-보이지 않는 무서운 힘을 느껴본다. <계속>

고개에서 苦盡甘來를 배운다.
기억에서 멀어진 나의 쓰라린 땀들아
대지에서 바람이 되어 부는 먼지들아
잘 있거라, 나의 모든 愛憎들이여

山自分水嶺에 順應한다.
山은 江을 건너지 못하고,
江은 山을 넘지 못한다.
길 위에 떠돌던 나의 노래만
山을 넘고 江을 건넌다.

그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수많은 因緣들과 작별한다.
다시 더 그리워질 苦行과 孤行과 高行을 위하여
더 낮은 곳으로 더 俗깊은 곳을 向해 疾走한다.
- 질주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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