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93] 拯急遺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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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93] 拯急遺方
  • 승인 2008.11.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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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되는 우리 옛 의학책

지난 10월말 런던출장길에 오른 필자에게 다급한 기자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지난 10월17일에 보물로 지정(제1577호)된 조선판의서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빠듯한 일정에다 서툰 대외업무에 전념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런 요청에 곧바로 응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재삼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진즉에 이 책의 보물지정 예고사실을 접하고 독자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에서 초고를 손대다 박쳐놓은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일에 떠밀려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올 여름 유난히 기나긴 무더위를 겪었지만 한의문화 부문에선 뜻 깊은 경사가 겹쳐있었다. 첫째는 문화재청에서 장서각과 규장각의 『東醫寶鑑』 초간본을 보물로 추가 지정한 것이고 둘째로는 조선 전기의서인 『증급유방』이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자격이 충분한 책이지만 그간 문화재 분야에서 의학서에 대한 대접이 다소 소홀했던 것에 비추어선 급격히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한의학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난해 『동의보감』 초간본을 UNESCO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게된 것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동의보감』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국립도서관 소장의 태백산사고본과 동시기에 간행된 두 가지 판본을 추가로 지정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도박물관 소장의 『拯急遺方』은 그간 전문가 이외에는 책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서로 세종대 『의방유취』 편찬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당시로선 최신 의학 서적이었다.

이 책은 명나라 葉尹賢이「醫家秘傳隨身備用加減十三方」과 「經驗急救方」을 합하여 편집한 것을 조선전기에 간행한 의서이다. 본문내용은 감기·독감·복통 등 13방에 대한 처방 뿐 아니라 쓰이는 약재 등과 건강 장수베개[神枕法]를 만드는 부록이 있으며, 卷下에는 治霍亂吐瀉, 久瀉不止 등 37방에 대한 처방과 약방문을 집성한 내용이 있다. 板刻 상태, 판의 형식, 서체, 紙質 등으로 보아 15세기에 간행된 판본으로 한국 의학사와 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현재 이 책은 최신판 중국의 문헌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간행사실조차 희미하다. 다만 이 책을 펴낼 때 기초가 된 원자료에 해당하는 加減十三方이란 책은 元代 徐文中의 원작(1413年刊)이며, 원서명은 「醫家秘傳隨身備用加減十三方」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책의 존재를 『의방유취』를 보았던 18세기 일본의 고증의학자인 丹波元胤의 『醫籍考』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판이라고 명기되지 않은 채 葉尹賢의 저작으로 1권이 傳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서에 대해서는 그간 일본 궁내청 도서료에 2권1책으로 된 조선 전기 刊本이 소장된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국내에 전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단종 2년(1454) 2월조에 “예조에서 의정부에 보고하기를 和劑方, 拯急遺方, 鄕藥集成方을 각기 5건씩 인출하여 약재와 함께 내려 보내라 하니 이에 따랐다”고 되어 있어 적어도 단종 2년 이전 세종조 후반에 이 책이 이미 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로 성종조에 나온 『經國大典』에 醫女習讀醫書로 올라 있어 널리 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 나온 『攷事撮要』 八道冊板目錄에 경주에서 이 책의 판목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에 널리 읽혀졌고 여러 가지 판본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제 이 책은 나라의 보물이 될 정도로 희귀한 책이 되고 말았으며, 그간 실전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니 재회하게 된 것만 해도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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