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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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8)
  • 승인 2008.11.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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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山을 오를 때는 惡山, 내려갈 때는 樂山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히말라야 산맥에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많아진다. 이 티베트 고원이 바다였다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되는 석회암, 변성암, 암염이나, 조개, 암몬나이트 등 바다생물들의 화석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지질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암몬나이트는 티베트 히말라야에서 아주 많이 발견되는 화석이다.
등반을 하건, Bike를 타고 고개를 오르건, 고행(高行)은 늘 고행(苦行)과 길동무가 된다. 높은(高) 곳을 오를 때면 늘 苦가 개입되어서 고개(苦介)가 됐다는 말이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오산(惡山), 내려갈 때는 요산(樂山)이다. 고개를 넘고 나면 내리막길 아래에서 은밀한 소식이 귓속말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낮은 곳으로 다가 갈 때마다 진해지는 바람의 내음을 음미해보라! 그 바람에는 속(俗)깊은 냄새가 난다. 고개에 내려서면 사람들 삶의 터전인 집과 농경지가 계곡과 함께 존재한다.
사람과 山이 함께하면 仙이고 谷과 함께하면 俗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낮은 곳의 은밀한 유혹을 선호하는 성향은 俗에 가깝다. 캐나다나 호주 같은 지겨운 녹색의 산소(O₂) 천국보다는 서울, 동경, 북경, 뉴욕, 파리 같은 즐거운 회색의 탄소(CO₂) 지옥에 익숙해져 버린 타성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진다. 나이 들수록 자기 인생은 산 정상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산 또한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외로워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高와 孤를 같은 의미로 해석했다. 그 높은 곳(高)에서 외로움(孤)과 벗하는 것이 仙이다. 고(孤)도 恨처럼 살아가는 힘이 되고 양식이 된다. ‘마음이 山에 있는 것’이 恨이다. 그러나 七艮山卦를 보면 恨은 ‘마음을 산(忄+艮)이 가로막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한 경지는 외면하고 허구한 날 酩酊 속에 산 속(俗)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문자 추상을 이해한다면 ‘주’건 ‘술’이건 그 속에는 <수>가 있다. 一六水는 속(深)에서 나와 밖의 시작이 되고, 속(俗)으로 흘러가 다시 끝이 되는 순환을 계속한다. 술의 高揚은 높지만 결국 水의 潤下를 이기지 못하고 興盡悲來하면서 흘러간다.
술은 세상 살면서 속(俗) 깊은 사람들을 적시면서 아래로 끌어내린다(潤下). 그래서 높고도 외로운 이들이 仙이 되어 떠난 빈 자리에 속 깊은 이들끼리 떼 지어 아래를 향해 적셔나가는 것이다. 仙! 上求菩提를 지향한다면, 俗은 下化衆生하는 것이다.

그런 仙界를 티베트에서는 샹그리라(Shangri-La; 지상낙원, 이상향)라고 부른다. 이 말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으로 유명해졌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 ‘샹그리라’라는 말은 가장 속된 호텔(싱가폴 체인본부), 모텔, 레스토랑 등의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속(俗) 깊은 사람들 역시 낮은 곳에서도 낙원(Paradise)을 갈망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들은 낙원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을 낮고 깊은 속(俗)에서 찾으려고 한 노력의 일환으로 좌도(左道)탄트라에 관심을 갖게 한다. 道敎에서 胎息法, 鍊丹法, 房中術, 養生술 등도 거의 비슷한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해가는 차원이다.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는 티베트에 불교를 처음 전해준 사람이다. 그는 7세기 무렵 인도 북부지역에서 흥행한 탄트라 불교를 티베트에 전한다. 탄트라불교는 대승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립되었다. 티베트에는 小乘, 大乘, 金剛乘이란 세 수레(乘)의 방대한 티베트 藏經이 있다. 방대한 藏經이 있는 것은 배우고 익히며 수행할 제자들이 서로 다른 수준과 根氣를 가졌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小乘과 북방의 大乘, 이 두 수레(乘)는 모두 경전에 드러난 가르침이라서 顯敎라 부른다. 그러나 金剛乘은 공부가 안된 下根氣 중생들이 보면 안 되는 비밀스런 가르침이라 密敎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經典이 아닌 Tantra(lineage; 계보; 續)로 비밀리 전수되었으므로 Tantra불교로 불린다. 소승과 대승을 철저히 수행한 뒤에야 밀교 수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탄트라불교의 비밀 수행에는 우도(右道)와 좌도(左道)탄트라가 있다. 우도탄트라는 Mantra(眞言), Mudra(몸 동작), Mandala(온전한 그림) 등으로 修行과 儀式과 瞑想을 위주로 한 밀교 전통이다. 좌도(左道)탄트라는 Sex에너지의 활용, Yaga 수행과 수련을 중시한다고 한다.

탕라를 넘은 뒤로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있지만 강물이 흘러내려 가고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내리막길이다. 낮은 곳으로 갈수록 공기는 찰지고 바람은 촉촉해진다. 공기의 밀도는 높아지고 이미 적응된 폐에서는 느긋하고 완만한 호흡과 박동을 하고 있다. 차츰 녹색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아무래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호수(戶數)도 많아진다. 이곳은 고개 저쪽과 문화가 다르다. 고개 너머 대표적인 마을이 니알람(Nyalam; 3750m)이다. 이곳은 우리가 출발했던 라사와 고도가 같다. 이제 종착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길손이여 힘을 내라.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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